동해함 사고, 총체적 감독부실
1 레이더 반경 임의 축소
2 관리감독 손놓은 해군-방사청
3 사전 회의도 한번 안해
지난달 1일 동해에서 시운전 중이었던 군함에서 발사된 포탄 5발이 민간 여객선 주변에 떨어진 사고는 군함에 탄 방산업체 관계자가 포탄의 최대사거리 반경에 여객선이 있는지 모르고 시험사격 발사 버튼을 눌렀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규모 사상자가 나올 뻔한 위험천만한 사고였음에도 시험사격 과정에 해군과 방위사업청의 관리감독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를 마친 당국은 시험사격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 사거리 내 여객선 유무도 알지 못하고 발사
13일 복수의 군 관계자와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시운전을 위해 ‘울산급 배치-Ⅱ 4번함(동해함)’에 승선해 있던 민간 방산업체 관계자는 함포의 최대사거리(22.2km)가 아닌 조준거리(14.8km)를 기준으로 레이더를 조정했다. 이에 따라 레이더 반경이 15km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당시 최대사거리 반경 안에는 선원과 승객 172명을 태우고 경북 울릉군 사동항에서 포항여객터미널로 향하던 여객선 ‘우리누리호’가 있었다. 동해함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함포를 발사했고 포탄은 울릉도에서 남서쪽으로 20여 km 떨어진 곳을 운항하던 우리누리호 인근 100여 m 해상에 떨어졌다. 동해함은 해군에 인도되기 전 시운전과 시험사격 절차를 밟고 있었다.
○ 사격 관리감독 손놓은 해군-방사청
방산업체 관계자가 발사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방사청이나 해군의 안전통제, 관리감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동해함 사업 관리감독은 방사청이 맡고 시운전은 업체가, 시운전 평가는 해군이 담당하고 있다. 당시 동해함에는 업체 시운전팀 함장을 비롯해 관계자 30여 명과 해군 관계자 20여 명이 탑승해 있었다. 하지만 해군은 사격 안전통제에 관여하지 않았고 방사청 관계자는 아예 현장에 없었다.
또 해군이 사격지휘관으로 지정한 인수평가 대대장도 시운전 당시 함정에 승선하지 않았다. 해군 관계자는 “사격지휘관 지정은 실무자의 행정 실수”라며 “함정 기동 및 사격지휘는 업체 측의 시운전팀 함장이 맡고 있어 해군은 권한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해함 건조부터 해군 인도 절차까지 과정을 총괄하는 방사청과 이를 우리 군 전력으로 실전 운용할 해군이 업체의 황당한 사격 실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방사청과 해군은 이번 사고가 재발되는 걸 막기 위해 안전통제를 지원할 영관급 장교와 레이더 전문 부사관들을 배치하는 규정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 시험사격 위한 사전 회의도 안 해
이뿐 아니라 동해함 출항 전 시험사격을 어떻게 진행할지 회의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방산업체 주관으로 방사청과 해군이 참여해 거쳐야 할 사격 절차 및 안전대책 등 세부계획에 대한 토의조차 사격 직전 함정에서 구두로 ‘약식’ 진행됐다는 것이다.
사고 직후 책임을 두고 해군과 방사청 간 ‘책임 떠넘기기’가 나오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해군은 함정 인수 전까진 시운전 책임이 없다고 하는 반면, 방사청은 시운전 및 평가는 전적으로 업체와 해군이 담당한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1980년대부터 업체가 사격시험을 실시하고 해군에서 이에 대한 안전통제 등을 해왔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안전통제를 위한 감독관 제도가 사라졌다”며 “관련 제도를 다시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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