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도 ‘인정’한 주한미군…남매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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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8월 11일 05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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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왼쪽)와 김여정 당 부부장. © News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왼쪽)와 김여정 당 부부장. © News1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는 담화에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그동안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암묵적으로 “주한미군 용인” 입장을 보였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김 부부장의 이 같은 담화 배경을 두고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관련 협상이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중국과 밀착한 데 따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은 10일 담화에서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이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 무력과 전쟁 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직접 겨냥했다.

‘주한미군 철수’는 그동안에도 북한의 선전매체나 군부에서 꾸준히 주장돼왔다. 그러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조부 김일성 주석이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한반도 유사시 우리 측의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일례로 김 주석의 국제담당비서였던 김용순은 1992년 1월 미국 뉴욕 유엔주재 미 대표부에서 열린 아널드 캔터 당시 국무부 차관과의 첫 북미 고위급 회담 당시 “북미수교를 해주면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하지 않겠다. 통일 후에도 미군은 남한 또는 조선반도에 주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때 미군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같은 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을 만나선 “주한미군이 역내 안정 유지에 역할을 한다”는 언급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19년 1월 김 총비서 특사 자격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 역시 “한반도 평화체제 이후에도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남북이 13개월 만에 통신연락선을 재가동한 지난달 27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우리 측 연락대표가 북측 연락대표와 통화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고 있다. (통일부 제공) 2021.7.27/뉴스1
남북이 13개월 만에 통신연락선을 재가동한 지난달 27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우리 측 연락대표가 북측 연락대표와 통화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고 있다. (통일부 제공) 2021.7.27/뉴스1

그러나 김 총비서 동생 김 부부장의 담화에 주한미군 관련내용이 담기면서 상당한 파장을 낳고 있는 상황. 특히 이 담화 말미에서 김 부부장은 “난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고 언급, 그 내용이 김 총비서의 입장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가 북한이 2016년 7월 ‘공화국 대변인’ 명의 성명으로 발표했던 이른바 ‘조선반도 비핵화’ 5대 조건과도 맞닿아 있단 관측도 내놓고 있다.

당시 북한은 Δ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Δ남한 내 모든 핵기지 철폐·검증 Δ미 전략폭격기 등 핵타격 수단의 한반도 전개 금지 Δ대북 핵무기 사용·위협금지 약속, 그리고 Δ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핵무기 개발에 본격 착수한 북한과 달리, 남한엔 1991년 9월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 발표 이후 핵무기가 공식적으로 생산 또는 반입된 적이 없다.

남한 일각에선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보유에 대응하기 위한 자체적 핵무장 또는 나토식 핵공유 필요성이 거론돼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주한미군 철수란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에 앞서 중국 당국이 북한과 마찬가지로 ‘한미훈련 중단’을 요구한 사실도 주목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6일 화상으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한미훈련은 건설적이지 못하다”며 “미국이 북한과 진정으로 대화를 재개하고자 한다면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 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 당국이 북핵 해법의 하나로 제시해온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훈련의 동시 중단)에 기초한 것이지만 동시에 북중 양측의 이해관계가 그만큼 맞아떨어짐을 방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당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때부터 미국 측과 전방위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대해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중국도 한미훈련 중단과 대북제재 완화를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북중 양측이 모든 책임을 한미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미국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담화에 다소 반영돼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북중 동맹이 이번 담화 발표에 배경이 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거론한 주한미군의 “전쟁 장비”가 중국 측이 철거를 요구하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김 부부장 담화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과거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핵위협과 전략자산 반입 비난과는 결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미중대결 구도 속 중국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이번 담화에서 “미국이야말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장본인”이라며 “현 미 행정부가 떠들어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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