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급 예우를 받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12일 “16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훈련 본훈련을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한미 훈련을 안 해도 된다’던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이날 “(김정은) 참수훈련을 하자”고 돌변했다. 북한이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기습 차단하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하며 군사도발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한목소리를 내야 할 외교안보 고위급 인사들이 오히려 우왕좌왕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연락선 복원 이후 정부가 속도를 내려던 대북 인도적 지원 논의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제동이 걸렸다.
● 훈련 이미 시작했는데 정세현 “중단 결단하라”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이날 TBS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이 겁을 내는 후반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조치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내일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반부 훈련은 그대로 가지만 후반부 훈련은 중단하는 쪽으로 한미가 입장을 조율했다는 식의 얘기가 좀 나와야 되지 않나”라고도 했다. 또 “남북관계가 앞으로 식어버린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한미관계만 생각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민주평통은 통일정책 전반을 건의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이자 헌법기관이다.
홍현익 신임 국립외교원장(차관급)은 이날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참수훈련, 선제공격, 안정화 작전이라고 하는 북한 점령 작전 이런 것도 이번 주에 해버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북한에) 더 이상 호의를 보일 필요가 없다”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를 “아주 교묘한 북한의 남남갈등 유도 전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홍 원장은 앞서 5일 같은 방송사 인터뷰에선 “본래 한미 연합훈련은 안 해도 된다. (참수훈련 같은) 훈련은 이번에 안 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이 도발 예고를 한 가운데 혼란한 발언이 이어지자 정부 안팎에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원 팀’으로 머리를 맞대고 대북 대응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리더들이 저런 식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툭툭 던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고위급 외교안보 인사들의 저런 민감한 발언 자체가 남남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 지원단체에 100억 원 지원하려던 회의 연기
통일부는 이번 주 개최할 예정이었던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교추협을 통해 대북지원단체들에게 약 100억 원을 지원하는 것을 검토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교추협을 언제 개최한다는 계획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연기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남북 통신선 단절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통신선 복원 이후 북한에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던 통일부는 당초 북이 우리 제안에 호응만 하면 바로 고위급 화상회담 등으로 이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시작 단계인 통신부터 끊겼는데 화상 회담 얘기를 밖에 꺼내는 게 부담스런 상황”이라고 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정부가 북한의 셈법에 말려 스텝이 꼬이면서 기본적인 남북 협력도 어려워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