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에 이어 해군에서도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여성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 소속 A중사(32·여)가 상관으로부터의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지 사흘 만인 이달 12일 오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군 안팎에선 A중사가 생전에 부모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근거로 2차 가해 가능성 등 지난 5월 발생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과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군 당국은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사안”이란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13일 해군에 따르면 군사경찰이 2함대 예하 도서지역 부대에서 근무하던 A중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를 처음 접수한 건 지난 9일이다.
A중사는 이보다 앞선 이달 7일 부대장 면담을 요청해 “지난 5월27일 B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부대장 면담 당시까지만 해도 “신고를 원치 않는다”고 했던 A중사는 이틀 뒤인 9일엔 부대장에게 신고 의사를 밝혔고, 동시에 본인 요청에 따라 육상 부대로의 파견조치도 이뤄졌다는 게 해군 측 설명이다.
이후 2함대 군사경찰은 A중사에게 여성 수사관을 배정해 10일 성고충상담관 배석 하에 피해자 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여성 국선변호인(민간인)을 선임해 법률지원에 나섰으나, 이틀 뒤인 12일 고장 난 전등을 교체하기 위해 숙소를 찾았던 부대 관계자들이 숨져 있는 A중사를 발견했다고 한다.
해군이 이날 공개한 A중사의 피해자 진술과 뉴스1 취재내용을 종합해보면, A중사는 지난 5월24일 2함대 예하 도서지역 부대에 전입했다. 그리고 ‘전투휴무일’이던 5월27일 오후 3시쯤 부대 인근 음식점에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B상사와 식사를 함께했다.
B상사는 이 자리에서 “손금을 봐주겠다”며 A중사의 손을 만지는가 하면 음식점을 나오는 길에도 어깨동무를 시도하는 등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중사는 전입 전부터 친분이 있던 부대 주임상사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주임상사는 “피해사실이 일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A중사의 요청에 따라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B상사만 따로 불러 “행동을 조심하라”며 주의를 줬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당시 주임상사가 제대로 조치(신고)하지 못한 건 잘못”이라면서도 “관련 법령상엔 성추행 사고가 일어나면 바로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훈령상으론 피해자 의사에 반하면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A중사는 성추행 피해 한달 뒤인 6월30일 2함대 성고충상담관으로부터 전입 후 첫 상담을 받았으나. 이때도 성추행 피해 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A중사는 “10년 이상 군생활을 한 데다, 도서지역 자원근무도 2번째”라며 “열심히 근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던 것으로 돼 있다고 해군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군 측 설명만으론 “A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지 70여일이 지나서야 신고를 결심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는 게 군 안팎의 일반적인 평가다. 오히려 A중사가 5월27일 이후에도 B상사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A중사 유족도 “5월27일 성추행 이후 부대 내 가해자의 지속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전했다.
하 의원에 따르면 A중사는 이달 3일엔 “일해야 하는데 (B상사가) 자꾸 배제하고 그래서 오늘 그냥 부대에 신고하려고 전화했다.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안 될 것 같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부모에게 보냈다.
군 당국은 A중사가 숨진 뒤 국방부조사본부와 해군중앙수사대의 합동수사단을 구성, 관련 수사에 본격 착수한 상황. 국방부조사본부 등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B상사에 대해선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다.
B상사는 A중사 사망 전날인 11일 2함대 군사경찰로부터 가해자 조사를 받았다.
해군 관계자는 “A중사가 숨진 현장에서 현재까지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A중사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서욱 국방부 장관은 A중사 사망 사건에 대해 “있어선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족과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한 치 의혹 없게 철저히 수사해 유족과 국민께 소상히 밝하겠다”고 말했다고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이 전했다.
앞서 군에선 지난 3월 선임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이모 공군 중사가 가해자와 부대 상관으로부터 사건 무마를 위한 회유·협박 등에 시달리다 2개월여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이성용 당시 공군참모총장은 군복을 벗었고, 서 장관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국민사과 입장을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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