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간부가 ‘조용히 넘어가자’ 해”… 성폭력 묵살-2차가해 의혹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4일 03시 00분


[‘성추행 피해’ 해군 女중사 사망]軍, 병영폐습 자정능력 한계 드러내
기강 해이 공군 女중사 사건 질타중에 성추행 되풀이
2차 가해 성추행 상관 “술 안따르면 3년간 재수 없어”
해군 같은 부대서 2~6월 또다른 성추행… 장교 1명 수사중

‘해군 女중사’ 소속 2함대사령부 차량 통제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사망한 해군 중사가 소속된 경기 평택 제2함대사령부
 앞에서 13일 군인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이 부대 소속 여중사는 전날 부대 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돼 군 수사당국이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평택=뉴스1
‘해군 女중사’ 소속 2함대사령부 차량 통제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사망한 해군 중사가 소속된 경기 평택 제2함대사령부 앞에서 13일 군인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이 부대 소속 여중사는 전날 부대 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돼 군 수사당국이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평택=뉴스1

해군女중사 유족 “2차가해-회유시도 있었다”
성추행 피해 신고 사흘 만인 12일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해군 A 중사가 2차 가해를 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았던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5월 21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처럼 A 중사도 가해자로부터 회유성 협박과 의도적 따돌림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겪었다는 것이다. 유족은 A 중사에 대한 상관의 회유 및 은폐 시도까지 있었다고 주장해 부대 차원의 은폐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군은 이날 A 중사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신고나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만 강조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 중사와 유족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A 중사는 메시지를 통해 “(가해 상관이) 일해야 하는데 자꾸 배제하고 그래서 우선 오늘 그냥 부대에 신고하려고 전화했다”며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 될 것 같다”고 호소했다. 또 가해자인 직속상관 B 상사는 성추행 다음 날인 5월 28일 사과하겠다며 A 중사를 식사 자리로 불러내 술을 따를 것을 요구했고, A 중사가 일과시간이라며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유족은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과 만난 하 의원은 “가해자가 아닌 부대 상관이 A 중사에게 ‘조용히 넘어가자’며 회유를 했다고 유족이 얘기했다”고 전했다. 또 이날 하 의원은 빈소가 마련된 국군대전병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고인은 (상관으로부터) ‘이번 일을 문제 삼으면 진급 누락이 될 수 있다’는 2차 피해를 입었다는 말도 유족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군은 이날 브리핑에서 A 중사가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최초 보고했지만 외부에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아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 및 상부 보고·신고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군이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해 2차 가해에 노출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공군에 이어 유사한 사고가 거듭된 것에 대해 격노했다”며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합동수사에 착수한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중앙수사대는 12일 강제추행 혐의로 B 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족 “간부가 ‘조용히 넘어가자’ 해”… 성폭력 묵살-2차가해 의혹

해군 A 중사가 직속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이달 12일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두 달여 동안 부대에서 2차 가해를 당하면서도 군으로부터 보호, 조력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불과 석 달 전 공군 이모 중사 사망 사건처럼 군의 성폭력 사건 처리 및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허점이 그대로 반복됐다는 비판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A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5월 말 공군 이 중사 사망 사건이 알려졌고,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사과하는 등 군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이 기간 동안 군이 성폭력 피해 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재발 방지를 공언할 때도 A 중사는 가해자로부터 업무 배제 등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성추행 다음 날부터 2차 가해”


13일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A 중사는 인천 옹진군의 한 섬으로 전입 온 지 사흘 만인 5월 27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B 상사와의 점심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하지만 B 상사는 28일 사과를 명목으로 A 중사를 또다시 점심에 불러 술을 따르게 했고 이를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 했다고 한다.

진급을 위해 섬에 두 번이나 자원 근무를 할 정도로 군 생활에 열의를 보였던 A 중사는 업무상 따돌림과 업무 배제 등의 2차 피해를 가족에게 토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A 중사는 사망 9일 전 가족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신고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하 의원은 “2차 가해가 매일 있었다고 본다. 같은 사무실에서 왕따를 당한 게 가장 괴로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A 중사는 10일 피해자 조사에서 “B 상사의 무시하는 태도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 중사는 9일 경기 평택 2함대로 이동하기 전까지 75일간 가해자와 분리가 안 된 채 작은 섬에 있는 부대의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성추행 17일 만에 가해자가 부대를 옮긴 공군 이 중사 사건보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더욱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 “상관이 ‘조용히 넘어가자’ 회유”

A 중사는 성추행 당일 부대 C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그는 가해자를 불러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주의만 준 뒤 이를 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 사건 접수는 74일 만인 이달 9일에야 이뤄졌다. 해군은 “A 중사가 당시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또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면 법령상으론 인지 즉시 보고하게 돼 있지만 훈령상에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보고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족과 만난 하 의원은 “피해자의 1차 신고는 사건 당일이다. (군이 피해자의 의사를) 과잉 해석한 것”이라며 “C 상사가 ‘조용히 넘어가자’고 회유를 했다. (A 중사) 부모가 해준 얘기”라고 반박했다.

○ 국방장관, 76일 만에야 사건 파악


서 장관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성추행 76일 만인 11일 사건을 처음 보고받았다. 다음 날 A 중사는 숨진 채 발견됐다. 군 관계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았을 시기였음에도 즉각 보고가 안 된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A 중사는 9일 성추행을 신고한 뒤 11일까지 3일 동안 8차례 2함대 성고충상담관에게 전화상담을 받으면서 우울감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차례 상담에도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한 공군 이 중사 사건처럼 징후 포착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한편 A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같은 부대에서 2∼6월 여성 하사를 성희롱한 남성 위관 장교 1명도 군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 피해#병영폐습#성폭력 묵살#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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