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임관후 직속 상관이 교제 제의… 거절하자 석달간 스토킹-성추행
부대 신고했지만 회유-합의 종용, 분리조치 안되고 2차가해 이어져
가해자는 처벌 안받고 해임 전역… 軍, 민간 수사기관 고소후에야 수사
檢, 업무상 위력 추행 혐의 기소
갓 임관한 육군 여군 부사관이 부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24일 뒤늦게 드러났다. 공군, 해군에 이어 육군에서도 군의 부실한 피해자 보호 시스템, 부대 내 2차 가해 등 군 내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난 고질적 병폐가 또다시 반복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육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의 성추행 신고 뒤에도 즉각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피해자의 형사고소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피해자 측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문제가 개선되는 집단이라면 살아있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관련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지만 “특별한 지시사항이나 말씀이 있지는 않았다”고 했다.
○ 이번에도 부대 내 전방위적 2차 가해
이날 육군 등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임관한 A 하사는 부대 전입 직후 직속상관인 B 중사로부터 ‘교제하자’는 제의를 받고 거절한 뒤 5월부터 석 달간 성추행 등 피해를 당했다. 피해자의 언니 C 씨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가해자는 상사라는 점을 이용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이어 평소 수위 높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고 집요한 스토킹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에 A 하사는 지난해 8월 4일 선임의 도움으로 피해 사실을 부대에 신고했고, B 중사는 약 한 달 뒤 형사처벌 없이 해임 처분을 받고 전역했다.
C 씨는 “사건 조사 과정에서 신고를 막으려는 회유 및 합의 종용이 있었고 적절한 분리 조치도 되지 않았다”며 부대 내 2차 가해가 이어졌다고 폭로했다. 한 간부는 “부대 분위기를 흐리지 말고 떠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또 부대 간부교육에서 피해자의 실명이 언급돼 ‘공식적인 성폭력 피해자이자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히거나 부대 내에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소문까지 퍼졌다고 한다. 육군은 “신고 다음 날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각 분리시켰다”고 했다.
이후 A 하사는 지난해 11월 부대를 옮겼다. C 씨는 “동생은 살기 위해 부대를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출 간 부대에서도 A 하사가 각종 소문으로 배척당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C 씨 주장이다. 그러면서 “건강했던 동생은 스트레스로 1년이 넘도록 고통 속에 있고 현재 수차례 극단적 선택 시도 끝에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호소했다.
○ 수사 안 한 軍, 민간에선 기소
성추행 사건에 대한 군의 본격적인 수사는 A 하사가 지난해 11월 민간 수사기관에 B 중사를 고소한 뒤에야 이뤄졌다. 석 달 전 사단 법무실은 피해자의 신고 의사를 고소 의사로 간주할 수 있었지만 징계 건으로만 처리했다. 신고 즉시 수사를 하지 않은 군과 달리 수원지검은 6월 B 중사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A 하사는 6월 공군 이모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시행된 군 성폭력 특별 신고 기간에 2차 피해 내용을 다시 신고했다. A 하사의 신고에 육군 중앙수사단은 부대 간부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군 검찰에 송치했고, 2차 피해와 관련된 간부들에게 징계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수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건 처리의 적절성도 조사 중”이라며 “성폭력 근절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엄정 조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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