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美의 손절…한미동맹 자립의지 다지라는 경고[화정안보포커스]<1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1일 14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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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안보포커스 15회 박현도 교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끝내기도 전에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격적으로 장악을 했습니다.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이 제2의 베트남 사태를 맞은 형국입니다. 여성 문제 등 인권 문제가 상당히 우려가 되는 가운데 국제 정세에 미칠 파장도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화정 안보 포커스는 아프간 사태의 의미와 한반도 안보에 주는 시사점 이런 부분들을 보고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박현도 교수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A. 안녕하십니까.

Q. 바쁘신 시간 내주셔 감사합니다. 미국은 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한 아프간 정부가 1년 반 정도는 버틸 것이라고 이렇게 발표도 했었는데 불과 몇 개월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이런 강력한 지원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는 왜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졌는지 좀 분석을 해봐야 될 것 같고요.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미국이 아프간의 어떤 내부적인 사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는지 어떤 치명적인 그런 정보 오류 이런 건 뭔지 그런 부분들이 좀 궁금합니다.

A. 네. 아마 미국은 7월 8일 날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물어봤습니다. 미군이 빠지면 어떻게 하느냐, 탈레반이 바로 접수하지 않겠느냐 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이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요. 우리가 길러놓은 아프간의 30만 정부군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이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실질적으로 지금 나오는 보도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30만 명이 허수라는 거죠. 그래서 미군으로부터 돈을 많이 받기 위해서 군인 아닌 사람들을 명단에 집어넣어서 돈을 받았고 그 돈들이 궁극적으로는 탈레반의 손으로 들어갔다 라는 지금 보도가 나오고 있고요.

그리고 미군이 철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발표를 하면서 아프간 군인들의 사기가 아주 급전직하를 해서 서로 살길을 찾았고 특별히 이 사령관이라든지 지역에 높은 사람들이 탈레반에게 항복을 해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탈레반에 잡히면 죽는다 생각하는 일반 병사인데 그래서 저는 싸우겠다고 하더라도 제 상관이 이미 저를 팔아버린 거죠.

그래서 굳이 싸운다는 얘기는 의미가 없고 그리고 이 병사들이 전부 다 돈을 제대로 못 받고 있었거든요. 몇 개월 동안 밀려 있으니까. 이는 아주 의지는 완전히 꺾었고. 탈레반이 안전 보장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준다니까 무기를 던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미국은 이제 그런 상황까지는 파악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은 정보의 부재가 있었고 그래서 오랫동안 중동을 취재했던 현지 기자들 얘기로는 미국은 정복은 잘하지만 민사 작전은 실패한다 라는 그런 뼈아픈 평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Q. 2차 대전 후에 미국이 지원을 했다가 실패를 한 중국 국민당이라든지 그 다음에 남베트남 이 공통점 중에 하나는 미국이 지원했던 정부가 현지 일반 대중들 국민들 지지를 못 받는 그런 이게 이제 있었는데, 이번 아프간 경우에도 파슈툰족이 한 50% 가까이 되는 파슈툰족은 미군을 마치 외세로 생각을 하고 배척을 했다고. 이렇게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이 이번 미군의 패퇴에 큰 영향을 미친 건지, 그런 부분들이 이제 저희가 좀 이해가 없는 그런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A. 네, 우리나라는 사실은 모든 국민들이 같은 말을 쓰고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아프가니스탄 이라는 나라는 파슈툰족이 한 43%를 차지하고, 두 번째 큰 부족이 타지크족인데요. 27%에서 보통 29%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네 번째가 하자라족과 우즈벡인데 이 사람들은 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가 언어가 사실은 통하지 않아요. 다리어는 하나로 공용어를 표준으로 쓰고 있지만 원래 그 부족들마다 다 다릅니다. 그리고 이 탈레반이 속한 부족은 파슈툰인데요. 그 안에서도 부족이 나눠져 있습니다. 파슈툰의 주력 세대들은 길자이 부족이고 그리고 파슈툰에서 미군과 협력했던 대통령 첫 대통령은 두라니 부족이고 지금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아흐마드자이 부족이거든요.

그러니까 탈레반의 기본 부족은 길자이 부족이에요. 그런데 길자이 부족들이 또 서로 응집하는 힘이 강하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만약에 미군이 성공을 했다면 어떤 작전을 했었어야 되냐면 2009년에도 그게 뼈아픈 얘기가 나왔습니다. 2009년에 미국이 즉 아프가니스탄 을 온전하게 다스리려면 이 길자이 부족 중에서 즉 탈레반의 주축 세력인 파슈툰족 중에 길자이 부족 중에서 탈레반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을 포섭해서 중앙정부의 고위직으로 앉히고 정부를 이끌어가야 되는데 그걸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카르자이 대통령을 앉혔지만 카르자이 대통령은 두라니 부족이었고요. 그리고 두라니 부족이 대통령으로 있어서 파슈툰이 힘을 받는 것 같았지만, 이 대통령이 주변에 있는 핵심 참모들이나 핵심은 타지크족이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탈레반족에서 봤었을 때는 얘는 우리 파슈툰족이 아니다 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 국민들이 굉장히 중요한 파슈툰 마음을 사로잡는 걸 실패를 했고 그러다 보니까 같은 파슈툰 임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었던 헬만드주에서 2009년 대통령 선거 때 이 파슈툰 두라니 족이었던 대통령의 선거인데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5%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파슈툰족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던 게 굉장히 큰 실책이기도 합니다.

Q. 탈레반이 과거에 5년가량 집권을 했다가 미국한테 이제 쫓겨난 다음에 20년 만에 다시 복귀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탈레반 대변인 발표에서도 국제사회로부터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도 하고 해서 ‘과거와는 달라지나’ 이런 이제 기대가 있는데 또 불과 한 두 주도 안 돼서 보복을 한다든지 여성을 길거리에서 처형을 한다든지 이런 모습도 나타나고 있는데, 또 탈레반이 통일적으로 이렇게 지휘 통솔이 안 돼서 위아래가 지금 이렇게 분열을 하는 그런 모습도 있고 좌우간 집권 탈레반 집권 2기라고 해야 되나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 것으로 보십니까.

A. 그러니까 20년 전과 지금하고 굉장히 달라진 거는요. 지금 탈레반들이 영어를 잘합니다. 그래서 이제 국제사회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기는 한데요. 20년 전과는 달리 자신들이 과거의 탈레반은 아니라고 그러는데 실질적으로 과거의 탈레반에서 달라질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완전히 전향했다’라는 전향서를 써야지 우리가 공산주의를 버렸다고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탈레반들은 어떠한 정치사상보다 더 강력한 종교 사상으로 무장되었라는 것이거든요. 종교 사상을 버리기 전에는 20년 전의 상황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유연한 목소리를 가지고 세계를 향해서 우리는 좀 더 포용적인 정부를 만들겠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국제적인 지원이 굉장히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 보고 있는 것 서방 선진국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중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때 과연 탈레반이 얼마큼 통일 정부를 구성하느냐가 관건인데 별 희망을 가질 수가 없는 게 지금 인선하는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테러분자들 이름들이 오르내리고 있어요. 내각 쪽에.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국제사회에 인정받기는 굉장히 어려울 거고요. 그래서 정말 상식 있는 국제사회는 그러한 내각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탈레반이 유연하게 나온다 하더라도 지원해 줄 수 있는 나라는 없고요. 중국만 아마도 탈레반을 아주 열심히 후원할 가능성이 큽니다.



Q. 방금 말씀하신 중국 얘기는 조금 뒤에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이번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사실 저희 한국 같은 경우에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미국이 자국의 국익에 맞지 않으면 손절을 했다. 동맹인 경우에도 언제든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이제 ‘자국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된다’ 이런 교훈을 주는 것이 이제 제일 큰데 저희 경우에 아프간 미국 철수를 보면서 어떤 시사점을 얻어야겠습니까.


A. 사실은 우리가 공산주의에 항상 고생을 많이 해왔고 너무나 혹독한 과거 시대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민들한테 충격을 주기는 굉장히 쉬운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미국에서 철수를 얘기했었을 때 그 철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 익명으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이 철수를 하는 이유는 지금 미국이 시급하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프가니스탄 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미국 본토의 위협이 되는 곳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특히 중동 시리아나 예멘은 미국의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그 수준도 안 되고 그리고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가장 얽혀 있는 중요한 나라들이 지금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그러한 전략적인 이해에 맞는 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군대를 빼는 거라고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당연히 북한을 중요시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미국이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처럼 나몰라라 하는 식은 서로가 되지 않을 거고요. 우리도 미국이 필요하고 미국도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걱정은 조금은 놔도 되겠는데요. 다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우리는 열심히 자주 국방을 하고 또 미국과 좋은 유대관계를 하면서 서로가 윈윈 하는 그러한 관계로 가는 게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배워야 될 가장 큰 교훈인 것 같습니다.

Q. 미국이 이제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한 다음에 중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미국이 없어졌으니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을 통해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한테는 기회가 된다. 이런 얘기도 있지만 위구르족. 신장 위구르족들이 다 탈레반과 같은 수니파여서 위구르족 탄압에 대해서 탈레반이 이의 제기를 하고 할 경우에는 탈레반하고 중국이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고 그래서 이런 탈레반 집권이 중국한테는 도전도 되고 기회도 되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보시는가요. 중국 탈레반 집권과 중국 어떤 시각으로 봐야합니까.

A. 말씀하신 대로 지금 중국한테 탈레반은 ‘양날의 칼’입니다. 좋은 점은 일단 중국으로서는 가장 좋은 점은 굉장히 껄끄러웠던 미군이 바로 문 앞에서 철수한 거니까 굉장히 안도에 한숨을 쉬는데 문제는 이 탈레반 정권이 정권을 잡았었을 때 과연 탈레반 원리주의 사상이 중국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 신장 위구르족.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거든요. 91km 정도의 국경을 맞대고 있고 그게 중국 서쪽으로 한 350km가 길게 뻗어 있는 와한 골짜기, 그 골짜기가 테러 분자들이 모이기 가장 쉬운 곳이고 지금 실질적으로 신장 위구르 지역 독립운동을 추구하는 원리주의자들이 그쪽 지역에서 모이고 있다는 첩보들이 계속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중국이 굉장히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아마도 탈레반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마음을 잡을 거고요. 그래서 지난 7월에 왕이 외교부장과 탈레반의 대표인(2인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톈진에서 만나서 쉽게 말하면 ‘우리 서로 문제 일으키지 말고 잘 살자’고 악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악수가 얼마큼 갈지는 사실상 예측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탈레반이 계속 중국과 잘 지내고 싶어도 신장 위구르 지역의 독립을 지지하는 무슬림이나 이런 사람들이 ‘탈레반 어떻게 너네 그럴 수 있느냐 같은 무슬림 형제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이냐’ 라고 압력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고요.

그렇게 되면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이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는 중국으로서는 지금 상당히 곤혹스럽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탈레반을 경제적으로 묶어놓으려고 노력을 할 겁니다마는 탈레반도 만만치 않게 중국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서로가 신경전을 상당히 벌일 것 같습니다.

Q. 제가 사전에 준비한 질문에는 없었는데 말씀을 듣다 보니까 생각이 났는데 이 사태가 나기 전에 미국이나 서방에서 신장 위구르족 100만 명을 억류하고 억류인지 강제 수용소에 있는지 하면서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이렇게 많이 제기를 했지 않습니까. 이게 아프간 철군을 오래전에 염두에 두고 일종의 예고편 비슷하게 했던 건가요.

A. 사실 재미있는 게요. 그전에는 이번에 철군 전까지 그전까지 미국은 신장 위구르 지역을 테러리스트로 같이 봤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러한 입장에서 벗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어마어마한 변화가 되는 거고요. 중국으로서는 강력한 도전자가 생긴 건데요.

중국은 사실은 신장 위구르 지역을 포기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자원도 많고 중국의 모든 핵실험을 거기서 다 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신장 위구르 지역에 그 참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방사능에 노출돼서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들이라든지 암이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마흔 번 40번이 넘는 핵실험을 하는 동안에 그 핵실험을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신장 위구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핵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불꽃놀이처럼 쳐다봤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거기 핵 실험장에 투입됐던 중국 사람들도 그렇고요.

그래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던 지역인데 중국이 그만큼 이쪽 지역에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자원도 많고요. 그래서 지금 신장 위구르 지역에 그전에는 신장 위구르 사람들이 훨씬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6대 4 비율로 한인(한족)들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완전히 한화를 시키는 상태인데 그렇기 때문에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럽고 그 문제가 생기는 시점이 결국에는 탈레반 쪽에서 이 아프가니스탄 쪽에서 탈레반이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 통로를 통해서 해방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든지 지원하는 사람들이 들어온다면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럽습니다.

Q.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를 하면서 아까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미국의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집중을 하겠다. 그렇게 하면서 결국 대중 견제 전선에 한국을 참여하라고 좀 더 압박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 한국의 어떤 운신의 폭이 이 아프간 사태 이후 더 좁아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게 저희한테는 제일 큰 과제가 될 것 같은데요.

A.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우리에게 어쩌면 미국 측에서 요청할 상황이 굉장히 큰 가능성이 있는 것은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서구 미국과 우리 자유주의 세계 국가들이 봤을 때 ‘이 정도면 괜찮은 정부다’라고 생각하는 통합 정부를 만약에 탈레반이 구축을 한다면, 그러면 미국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그때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지원이냐 하면은 군사적 지원이라기보다는 여성 인권 신장이라든지 민사와 관계된 인권 신장에 관계된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우리는 또 국제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그 부분은 우리가 또 해야 될 책임도 가지고 있고요. 그런데 이제 관건은 탈레반이 과연 그러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조건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거 외에는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제 전공 분야는 아닙니다마는 우리에게 압력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미국이 그동안에 산만했던 전력을 중국을 제어하게 되어 오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늘어날 거는 명확한 사실일 것 같습니다.

아프간 사태는 특히나 이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이 그 어디보다도 큰 것 같습니다. 한미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우면서도 미국에만 안보를 의지해서는 안된다라는 그런 소위 ‘자강론(自强論)’이 설득력을 갖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탈레반이 집권을 해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국제사회가 주시를 하고 있는데 우리 경우에는 한반도 안보상황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또 면밀히 주시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제2의 베트남’ 굴욕


‘제국의 무덤’ 아프간에서 20년만의 철수

실패한 아프간 전쟁 20년


미국이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7일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21년 8월 30일 철군을 마쳐 20년 만에 일단락됐다. 미군을 태운 마지막 C-17 수송기는 카불 시각 30일 밤 11시 59분에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을 떠났다.

미국은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OEF)‘이라는 이름으로 공습을 벌여 아프간에 들어갔으나 철수 당시 미국 국적자 200여명과 미군이나 중앙정보국(CIA), 미국 외교관들을 도왔던 아프간 통역사, 운전사 등과 그 가족 등 6만명을 탈레반의 보복 위험 속에 남겨둔 채 서둘러 떠났다.

미국은 아프간 20년간 2461명(13명은 마지막 철수 직전 카불 공항 테러 희생자)이 희생되고 전비 2조2600억달러(약 2620조원)를 썼지만 세계 최강국이 무장단체 탈레반에 손을 들고 나가는 형국이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4명의 대통령이 20년간 치른 전쟁은 아프간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시도할 기회를 주고 많은 여성에게 교육과 직업을 추구할 자유를 줬지만 거의 모든 목표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왕정기의 실리 외교

아프가니스탄은 18세기 두리니 왕조가 첫 근대국가를 이루기 전까지는 여러 민족과 부족이 할거했다. 아프간 영토는 고대 알렉산더 대왕부터 몽골 제국, 근대에는 대영 영국의 침략을 받았다.

아프간은 19세기에는 남진하는 러시아와 인도 식민지를 바탕으로 이를 막아내려는 영국간의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였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지정학적 단층지대에서 영국과 는 3차례 전쟁을 치렀다. 아프간은 1차 세계 대전 후인 1919년 영국과 3차 전쟁에서 ’라왈핀디 조약‘을 통해 영국을 몰아내고 독립한 뒤 왕정 체제가 됐다.

독립 첫 국왕 아말눌라 칸(1919~29)과 2대 나디르 샤(1929~33 나디르 샤)를 거쳐 즉위한 국왕 무함마드 자히르 샤(1933~1973) 시절 아프간은 2차 대전에 불참하고 냉전시대에는 중립 정책을 펴면서 근대 국가의 기반을 닦았다. 이슬람 국가지만 서구 문물에도 개방적이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실리적인 외교를 펴면서도 인접국인 구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완화하기 위해 소련과 군사적으로 교류했다. 소련 연수를 다녀온 군인들이 소련식 공산주의를 추구하면서 이른바 ’붉은 물‘이 들기 시작했다.

1973년 샤 국왕의 사촌이자 매부 무함마드 다우드 칸이 샤 국왕 해외 순방 중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언하며 첫 대통령에 취임했다. 다우드 칸은 군부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사회주의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반공 정책을 폈다.

구소련, 아프간 수렁에

1978년 공산주의 정당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이 다우드 대통령 및 일가를 살해하고 정권을 전복했다. ’샤우르 혁명‘이다. 이에 전국적으로 이슬람 무자헤딘의 게릴라 저항이 발생해 내전으로 비화했다. 소련은 1979년 12월 사회주의 정부 지원 등을 명분으로 군사적으로 개입해 최대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다. 구소련의 지지를 받은 인민민주당의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은 구소련 붕괴 당시인 1991년까지 존속했다.

파키스탄이 무자헤딘을 지원하고 미국도 1979년 중반 이후 파키스탄 정보부(ISI)를 통해 반소련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2000개 이상의 FIM-92 스팅어 지대공 유도탄은 무자헤딘의 주력 무기가 됐다.

구소련은 1989년 구소련 붕괴의 내부적인 혼란과 사상자가 증가하는 아프간 전에 대한 여론 악화, 무자헤딘의 저항, 국제 사회의 압력 등으로 10년만에 철수했다. 영국에 이어 구소련이 물러나면서 아프간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왔다. 구소련이 붕괴 해체된 데는 체제의 낙후와 비효율성, 미국과의 군비 경쟁과 함께 아프간의 수렁에서 국력이 소진된 것도 한 요인이 됐다.

구소련이 철수한 뒤 무자헤딘 7개 단체와 북부 동맹 등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으나 아프간은 사실상 군소 군벌간 내전 상태로 들어갔다.

구소련에 대항하는 이슬람 무장세력 중에는 알 카에다도 있었다. 하지만 구소련이 물러간 뒤에는 미국이 배척하는 집단이 됐다. 반미로 돌아선 알 카에다는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을 적대적으로 여기다 9·11 테러까지 저질렀다.

탈레반 집권과 축출, 재집권

친소 정권에 대항하는 무자헤딘의 활동 속에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이 1994년 결성된 뒤 2년 후 아프간을 장악했다. 탈레반은 9·11 이후 미군에 축출될 때까지 7년 가량 집권하면서 ’샤리아‘에 바탕을 둔 원리주의 이슬람 정치로 아프간을 통치했다.

샤리아는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과 행동을 담은 코란과 하디스, 이슬람 공동체 내부 원칙을 담은 이즈마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교법이자 규범이다. 참수를 포함한 사형과 태형 등 전근대적 형벌이 포함되어 있어 반인권 비판을 받는다. 특히 여성은 교육과 사회 활동을 제한 금지하고 가족 외의 남성에게는 자신의 외모를 드러내지 않도록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했다. 탈레반은 집권 1기 관공서 등 주요 일자리에서 여성을 내쫓고 12세 이상 여성의 교육 기회도 전면 박탈했다.

탈레반을 몰아낸 뒤 아프간은 미국의 지원하에 하미드 카르자이(2004~2014)와 아슈라프 가니(2014~2021) 대통령이 집권했으나 무능과 부패, 다양한 민족과 부족간 화합 실패 등으로 미국의 막대한 군사적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다시 탈레반에 정권을 내주게 됐다.

미국도 아프간 수렁에

미국은 처음 아프간에 군사 개입할 때는 알 카에다 지도부 등을 제거하고 테러리스트의 거점을 파괴하는 목표를 세웠다. 차츰 아프간에 세속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세우는 것으로 목표를 확대하면서 수렁에 빠졌다.

아프간 내부적인 요인 못지않게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아프간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도 패퇴의 한 요인이 됐다. 아프간 주둔 미군을 2만 명에서 6000명으로 줄이자 탈레반은 지역을 거점으로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장기전을 펴며 세력을 불렸다.

2011년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고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철군은커녕 다시 늘려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라크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무장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는 아프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8월 3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4월 발표하면서 미군 철수 후에도 길게는 1년반 이상 탈레반과 정부군이 대치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미처 철수를 마치기도 전에 탈레반은 수도 카불까지 장악했다. 아프간에 들어와 20년을 머물렀지만 아프간에 대한 이해 부족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프간과 미-중 갈등



미국이 물러간 뒤 아프간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가장 관심은 중국과 탈레반 정권과의 관계다. 아프간은 6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중국과는 90km 가량 위구르자치구와 접해있다. 중국은 탈레반 집권이 신장자치구의 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을 자극하거나, 위구르족의 인권 탄압 호소에 탈레반이 호응하는 등 탯줄같이 이어진 와한 회랑을 통해 탈레반과 위구르족이 연계를 강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7월 28일 왕이 외교부장이 톈진에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과의 단절을 촉구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통한 아프간 재건 사업과 경제 지원을 제시했다. 채찍과 당근이다. 하지만 신장에서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에 공동으로 저항하겠다고 나설 경우 중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에서의 철수를 밝히면서 “우리의 전략적 경쟁자들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2년, 4년, 심지어 20년 더 갈등에 빠져 꼼짝도 못하는 걸 가장 반길 것”이라고 했다. 아프간에서의 철수 목적 중에는 아프간의 수렁에서 빠져 나와 보다 전략적으로 위협이 되는 중국과 러시아에 집중하겠다는 뜻도 있다.

미국이 1980년대 무자헤딘에 제공한 대공 미사일 등이 구소련에 대항하는 주력 무기가 된 것처럼 미군이 철군하면서 남긴 블랙호크 헬기와 탱크 등 무기는 중국을 겨냥하는데 쓰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마치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이용한 중국 견제, 즉 미국판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반도는 대중 견제 전선의 최전방으로 미국이 앞으로 한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할 수도 있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가 미-중 갈등이라는 구도 속에 한반도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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