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자유에 중대한 위험(grave risk)이 될 수 있다”며 정부에 “국제인권 기준에 맞게 수정을 촉구”한 서한이 1일 공개됐다. 그는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언론의 자체 검열을 초래하고 공익 문제에 대한 토론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했다.
○ “정부·정치 지도자에 대한 비판 제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이날 홈페이지에 칸 보고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에 보낸 공식 서한 전문을 올렸다. 유엔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한 것은 처음이다. 칸 보고관은 서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적법성, 필요성, 비례성 측면에서 모두 부적절하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칸 보고관은 ‘가짜 뉴스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 규범상 표현의 자유는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 보건 및 도덕을 보호하기 위할 때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한해야 한다”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런 보호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에 지나친 재량권을 부여해 (법률의) 자의적인 이행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칸 보고관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필요성’ 측면에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및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규정한 30조 2항에 대해 “매우 모호한 표현(vague language)이 쓰였기 때문에 정부나 정치 지도자, 공인 등에 대한 비판이 제한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내년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정보 접근과 자유로운 생각의 전달이 특히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처벌의 비례성’에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 항목이 “언론 보도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면서 “완전히 불균형적(utterly disproportionate)”이라고 지적했다. 또 “모호한 조항을 (법원이) 자의적으로 적용해 언론에 출처를 누설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등 언론 자유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칸 보고관은 “당국의 의도는 미디어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개정안이 변화 없이 채택되면 (그 의도와)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도 했다.
○ “언론중재법 아닌 다른 접근법 고려하라”
칸 보고관은 서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상정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정보공개법의 채택이나 강화, 독립적인 팩트 체크 촉진 등 다른 접근법을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또 “법률 초안을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면서 “국회 표결에 임할 의원들과도 이 같은 의견과 우려를 공유해 달라”며 정부에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다. 정부는 60일 이내에 유엔에 입장을 보내야 한다.
유엔은 최근 각국에서 ‘가짜 뉴스’ 문제 해결을 내세워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늘어나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언론중재법이 세계적으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신속하게 우려 서한을 발송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4일 유엔 측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를 알리는 서한을 보낸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유엔은 한국의 선례가 다른 나라들에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중재법 개정 상황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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