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간병위해 청원휴가 다녀온뒤 선임병들 “꿀 빤다” 폭언-폭행
함장에게 가혹행위 신고 했지만 수사는커녕 분리조치도 안해
자해시도 이후에도 ‘화해’ 대면시켜… 함장 등 주요간부 다른 임무 파견
해군, 부실조치 의혹 등 수사도 못해
해군 일병이 선임병들로부터 구타, 폭언, 집단따돌림을 당했다고 신고했지만 부대의 미온적인 대처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군 내 성추행 사건의 파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실한 후속 조치 및 피해자 보호 시스템 등 군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반복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 피해자 신고에도 ‘화해 자리’ 만든 부대
7일 해군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6월 1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모 일병은 지난해 11월 어학병으로 해군에 입대한 뒤 2월 해군 3함대 강감찬함에 배속됐다. 전입 열흘 뒤 정 일병은 사고를 당한 부친 간호를 위해 2주간 청원휴가를 다녀왔고, 그때부터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시작됐다는 게 인권센터의 설명이다. 인권센터는 “선임병들은 정 일병을 곱게 보지 않았다. 아버지 간호를 하고 온 사정을 알면서도 ‘꿀을 빨고 있네’, ‘신의 자식이다’라는 말을 하며 대놓고 정 일병을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 일병이 승조원실(내무반)에 들어오면 다른 병사들이 우르르 나가버리기도 했다. 인권센터는 또 “정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묻자 이들은 ‘뒤져 버려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면서 “선임병들이 정 일병을 앉혀놓고 욕설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시 밀쳐서 앉히는 등 폭행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 일병은 3월 16일 함장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로 선임병들의 폭언, 폭행을 신고하며 비밀 유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들에 대한 수사는 물론이고 2차 피해 예방에 필수적인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보직과 승조원실만 바뀌었을 뿐 함정 내에서 정 일병은 가해자들과 계속 마주쳤다.
이후 정 일병은 자해 시도를 하는 등 극단적 선택 징후를 보였지만 함장은 ‘가해자들을 불러 사과받는 자리를 갖는 게 어떻겠느냐’면서 선임병들과 대면하게 했다고 한다. 인권센터는 “엄연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이후 구토, 과호흡 등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며 갑판에서 기절하는 일도 벌어지자 함장은 4월 6일에야 정 일병을 하선시켜 민간병원 위탁진료를 보냈다. 신고 21일 만이다.
○ 부대 부실 조치, 파견 임무로 수사도 못 해
해군은 정 일병이 사망한 이후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부실 조치 의혹을 받고 있는 함장 등 주요 간부들이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청해부대 34진(문무대왕함) 이송 임무에 긴급 파견돼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해군은 “사망 원인과 유가족이 제기한 병영 부조리 등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강감찬함 함장 등 간부들은 조만간 국내에 복귀하는 대로 소환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군인권센터는 “해군은 즉시 정 일병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의 신상을 확보하고, 지지부진한 수사 역시 해군본부 검찰단으로 이첩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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