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여권 정치인에 대한 ‘고발 사주 의혹’이 명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진실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고발장 전달 창구’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목됐지만 김 의원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해명만 반복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모양새다. 특히 김 의원이 이 사건의 제보자가 특정 대선 후보 또는 세력과 연계돼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면서부터 정치적 공방만 가열되는 상황이다.
○ 4월 3일과 8일 두 개의 고발장
김 의원이 지난해 총선 직전 텔레그램을 통해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소속 인사에게 전달했다는 증거라며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가 공개한 고발장은 2개다.
여권은 애초 지난해 4월 3일 전달된 첫 번째 고발장을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고발장 작성자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과 뉴스타파 및 MBC 기자 등 13명(성명 불상 열린민주당 당원 1명 포함)을 피고발인으로 적시했다. 고발인 기재란은 성명과 주소 등 인적사항이 전부 비어 있다. 고발장에는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모두 특정 세력의 공작에 따른 허위, 조작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고발장 작성자는 “황희석 최강욱 유시민 등이 공모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냈다”고 강조했고, 결론에 이르러서는 “총선에 앞서 신속한 수사를 진행하여 엄히 처벌해 달라”고 촉구했다. 명예훼손 피해자로는 윤 전 총장과 부인 김 씨, 한동훈 검사장을 적시했다.
여권은 이를 근거로 “윤 전 총장이 부인 김 씨 등을 보호하기 위해 고발을 사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캠프는 “검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기엔 무리한 표현들이 많다. 시민단체나 제3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맞섰다.
총 20장으로 작성된 이 고발장은 문서가 아닌 사진 형식이었고, 각 사진마다 ‘손준성 보냄’이란 문구가 표시돼 있다. 텔레그램은 수신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할 경우 이렇게 출처를 표시한다. ‘손준성’은 윤 전 총장의 측근으로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었다.
5일 후인 지난해 4월 8일 김 의원이 ‘4월 3일’ 고발장을 전송했던 사람에게 또 다른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게 뉴스버스의 보도 내용이다. 8장인 이 고발장은 최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라는 내용이다.
실제 당시 통합당은 지난해 8월 검찰에 최 의원을 고발했고, 최 의원은 올 6월 1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여권은 “통합당이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과 김 의원이 전달한 ‘4월 8일’ 고발장이 거의 동일하다”며 “고발 사주 의혹의 명확한 증거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 고발장 작성 주체와 전달 과정이 핵심 고리
이 사건의 의혹을 규명하는 핵심 고리는 고발장의 작성 주체와 작성 경위 그리고 전달 과정이다. 여권은 ‘손준성 보냄’을 근거로 “윤 전 총장의 측근인 손 검사가 고발장을 직접 작성해 야당에 고발을 사주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손 검사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일각에선 텔레그램의 ‘손준성 보냄’ 문구 자체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손 검사→김 의원→통합당 인사’로 고발장이 전달된 ‘정황 증거’는 나왔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는 셈이다.
뉴스버스에 고발장을 제보한 인사의 ‘정체’ 역시 오리무중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직전 통합당에서 활동한 A 씨에게 고발장을 건넸다면서 “그 사람이 밝혀지는 순간 어떤 세력인지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A 씨가 제보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A 씨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제보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A 씨가 아닌 다른 제보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대검이 실제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인정하면서 제보자의 정체가 드러나기는 어렵게 됐다는 전망도 많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제 검찰이나 특검 등 수사기관이 나서야 풀릴 수 있는 사건이 돼버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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