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공개한 지 이틀 만인 1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강공 드라이브’를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가 열린 다음 날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이 방한해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고강도 무력시위를 보란 듯이 강행한 것이다. 중국 고위급 인사 방한 시점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이 도발했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북핵 문제의 건설적 해결을 강조해 온 중국이 난처한 처지가 됐다. 실제 왕 부장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오찬 회담 중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한반도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 6개월 만에 KN-23 개량형 발사한 듯
북한은 이날 5분 간격으로 2발의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쐈다. 첫 번째 미사일은 왕 부장이 문 대통령을 예방한 지 59분 만에 발사됐다. 군은 정점고도(60여 km)와 사거리(약 800km), 비행속도 등에 비춰 3월 25일 시험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개량형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3월 KN-23 개량형의 첫 시험발사 직후 탄두 중량이 2.5t에 달한다고 밝혔고 이에 따르면 수 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파괴력)급 전술핵을 충분히 실을 수 있다. 사거리로 보면 2019년부터 KN-23을 비롯해 북한판 에이태킴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가운데 가장 멀리 날아갔다. 군 소식통은 “탄두 중량을 좀 줄였거나 추진체를 개선해 사거리를 200km가량 늘리고 정밀도를 높이는 테스트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월 발사 때처럼 이번에도 낙하 시 저고도에서 풀업(pull-up·급상승) 기동을 했지만 우리 군의 장거리 레이더와 이지스함, 미일의 위성·레이더에 전체 비행 궤적 및 낙하지점이 탐지됐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3월과 9월 모두 순항미사일 시험발사 나흘 뒤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는 패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전 승인하에 치밀히 준비된 정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주한미군을 관할하는 존 아퀼리노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이 7월 국회 국방위원회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 위협이 가중되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를 추가 배치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방한 왕이, 北 겨냥 “악순환 않도록 자제해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은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 왕 부장의 방한,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 등 ‘북핵 외교 이벤트’가 이어지는 시점에 이뤄졌다. 한미를 향해 앞으로 전략무기 도발이 이어질 것이라는 압박성 경고인 동시에 향후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의 이번 도발은 왕 부장의 방한 시점과 겹쳤다. 북한이 그동안 중국의 대형 행사나 한반도 관련 행보가 있을 때 도발을 피해 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중국으로서는 체면이 깎인 셈이다. 왕 부장은 북한 미사일에 대해 “일방(一方)의 군사적 조치가 한반도 상황에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국이 자제할 것”을 언급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영변 원자로 가동과 순항미사일 발사에도 미국의 반응이 없자 조급해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 중국도 나서라는 메시지를 낼 기회로 왕 부장의 방한 시점을 노렸을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이날 문 대통령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참관 뒤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라고 말한 것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문 대통령의 ‘도발’ 발언에 대해 “부적절한 실언을 했다.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힘자랑이나 하는 것이 대통령이 할 일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며 “매사 언동에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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