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도, 전문성도, 의지도 실종된 북한군[주성하의 北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6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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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을 보면 저렇게 수뇌부의 서열이 요동치는 군 조직이 어떻게 유지가 가능한지, 저렇게 비전문적인 조직이 과연 전쟁은 치를 수 있을지 신기할 정도다. 까마득한 후배가 갑자기 상급자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고, 총참모장(한국 합참의장)을 지내다 사회안전상(경찰청장)으로 가는 등 전문성이란 것도 존재하나 싶다.

김정은 집권 초 북한군은 부단한 수뇌부 교체를 겪었다. 그때는 젊은 지도자가 쿠데타 등을 우려하다보니 군부 힘을 빼놓기 위해 정신 차릴 틈이 없이 물갈이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10년차가 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최근 달라진 북한군 수뇌부를 봐도 알 수가 있다. 북한군엔 도대체 서열이란 존재하나 싶고, 인사에서 밀린 장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지도 궁금하다.

대표적 사례 몇몇을 보자.

9월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군부 전체를 통솔하던 이병철을 대신해 새로 상무위원이 됐다. 노동당 상무위원은 김정은을 제외하고 4명인데, 이병철은 북한이 공식발표한 상무위원 서열에서 최룡해 다음으로 2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그 뒤에 김덕훈 내각 총리,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가 호명된다. 김정은까지 포함할 경우 북한 전체 서열에서 3위인 자리에 박정천이 발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박정천은 2015년에 계급이 소장(한국군 준장)에 불과했다. 6년 만에 소장-중장-상장-대장-차수-원수로 이뤄진 북한군 계급 체계를 다 밟고 승진했고, 지금은 상무위원이 돼 군 최고 수뇌에 오른 것이다. 북한군 하급 병사도 1년에 한 계급 올라가기 거의 불가능한데, 장성 승진이 병졸 승진보다 더 빠르다.

박정천이 벼락출세를 할 동안 다른 장성들은 무슨 심정이었을까.

북한군은 한국군에 비해 장성수가 3배 정도 많다. 2021년 한국군의 장성 정원은 375명인데 북한군 장성 보직은 1000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세계대전을 몇 차례나 치른 나라인 듯 대원수-원수-차수 등 강대국들도 없는 계급 체계를 갖추고 있고 장성 숫자도 대단히 많다. 이런 상황이니 박정천의 선배 장성들도 매우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이름 한번 호명되지 않고 있다.

물론 박정천의 인생도 기구하다. 그는 2012년에 이미 소장을 달고 있었고, 2012년 중장, 2013년 상장이 됐는데 2015년에 갑자기 상장에서 소장으로 강등됐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70세 훌쩍 넘어서도 현직을 유지하는 북한군의 특성상 2012년에 소장 이상을 달고 있었던 장성들은 아직 현직에 족히 수백 명은 될 듯 싶다.

박정천은 전형적인 포병맨이다. 포병사령관, 포병국장을 거쳐 인민군 총참모장이 됐다. 일반 군단을 지휘해보지 못한 포병 출신이 육해공을 모두 지휘해야 하는 총참모장이 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다.

그런데도 그가 북한군 군단장들을 다 제치고 총참모장에 이어 북한군을 통솔하는 군 담당 상무위원이 된 것은 누구보다 김정은 옆에서 박수를 친 시간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늘 곁에 있다보니 때론 기분 나쁘게 한 일도 많아 거의 매년 계급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김정은은 집권 이래 쏘는 데 매우 집착해 왔다. 그는 2004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과에 입학해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물론 일반 학생들과 함께 대학에 다닌 것은 아니다. 홀로 군 장성들의 특별과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수많은 병과 중에 하필 포병과를 선택해 들어갔다는 것은 그가 애초에 포사격을 제일 좋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집권해서도 김정은은 수시로 포사격과 미사일 발사 실험장에 나타났고, 쏘는 순간 그의 얼굴 표정은 늘 활짝 웃고 있었다. 이런 김정은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사람이 포병사령관인 박정천이었다.

박정천은 김정은의 요구 사항을 비교적 잘 맞춰준 것으로 보인다. 300미리 등 각종 대구경 방사포를 만들라면 방사포를 만들고, 순항미사일을 만들라면 순항미사일을 만들었다. 9월 북한이 공개한 열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도 박정천이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런 공로로 포병과의 한계를 넘어 북한군 최고 수뇌가 됐다. 그런데 포병 밖에 경험이 없는 그가 전쟁이 일어나면 과연 육해공 전체를 통솔해 종합적인 지휘를 할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

김정은 옆에서 박수칠 기회가 적어 후배의 지휘를 받게 된 북한군 군단장들이나 각종 병과 사령관들은 어떤 심정일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포병이나 됐을껄…”하며 ‘껄무새’가 되거나 또는 “저 인간은 또 언제 목이 날아나지”하며 손가락을 꼽고 있을지 모른다.

올해 7월 국방상이 된 이영길이 바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대표적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 역시 경력이 만만치 않다. 이영길은 2013년 8월에 총참모장이 돼 2년 반이라는 비교적 오랜 기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갑자기 강등돼 사라졌다가 다시 2018년 6월에 다시 총참모장이 됐다. 이영길이 처음 총참모장이 됐을 때 박정천은 포병사령관으로 그의 지휘를 받았다. 이영길이 두 번째로 총참모장이 됐을 때도 박정천은 포병국장으로 역시 그의 수하였다. 이영길은 2019년 9월 총참모장직을 박정천에게 물려주고 뜬금없이 경찰수장격인 사회안전상에 임명됐는데, 올해 7월 다시 국방상으로 돌아왔다. 와보니 이제는 박정천의 지휘를 받는 신세가 됐다.

7월에 이영길의 후임으로 사회안전상이 된 장정남은 그 자리가 차라리 편할지도 모른다. 장정남은 2013년에 국방상(당시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역시 당시 박정천은 그의 지휘를 받는 위치에 있었다. 장정남은 2002년에 소장이 된 경우라 박정천에 비해 승진도 빨랐던 듯 싶다.

이후 장정남의 인생은 평탄치 않았다. 2013년 5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13개월 동안 계급이 4번이나 바뀌었다. 중장에서 상장이 됐다가 3개월 뒤 다시 대장이 된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6개월 뒤 상장으로 강등됐다가 1개월 뒤 다시 대장이 됐다가 4개월 뒤 다시 상장이 됐다. 2014년 6월 그는 인민무력부장에서 해임돼 5군단장이 됐는데 현재도 상장을 달고 사회안전상을 하고 있다. 상장이라도 달고 있는 것이 다행일지 모른다. 2018년 4월 대장에 국방상까지 지낸 장정남이 대좌(대령) 계급을 달고 회의에 참가한 사진도 공개됐다. 그랬다가 9일 뒤 다시 상장을 달고 공식 무대에 나타났다. 장정남은 대장에서 대좌로 강등됐다가 다시 상장까지 드라마틱한 롤러코스터를 탄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5년 4월 국가정보원이 반역죄로 공개 처형됐다고 밝힌 당시 총참모장 현영철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현영철이 김정은이 참가한 회의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처형됐다고 알려졌지만 꼭 그 이유 때문에 죽었다고 보기엔 무리다. 2016년 총참모장에 임명된 이명수의 경우에도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조는 장면이 목격됐지만 살아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현영철이 김정은의 군 인사에 불만을 터뜨리다가 걸려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까마득한 말단 장성을 기분이 좋다고 승진시키고, 군에서 신망이 두텁던 능력 있던 장성은 기분이 나쁘다고 숙청하니 현영철이 “군 체계가 무슨 꼴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다 밀고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정은 집권 초기에는 군 경험이 전혀 없는 장성택이나 김경희에게 하루아침에 대장 계급을 달아주기도 했고, 노동당 조직부 간부들에게도 선물하듯이 대장, 상장 계급을 하사하기도 했다. 하긴 군 경험이 없는 김정일, 김정은이 원수가 돼 최고사령관이 된 북한군에서 누가 장성을 달던 큰 의미는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현영철이 개탄한 상황이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포 사격과 미사일 사격 때마다 김정은 옆에 붙어 열심히 박수친 박정천이 군 최고 수뇌가 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군 장성들은 김정은에게 충성할 마음이 생길까. 게다가 후배가 상급자가 됐다고 전역을 신청할 수도 없다. 군복을 벗겠다고 자발적으로 말하면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고 숙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군은 엄격한 지휘체계가 필요한 조직이고, 따라서 그 어느 조직보다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북한군에는 서열도, 순서도, 능력도, 전문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북한군이 과연 전쟁을 치를 능력이 있을까. 우리는 북한군의 능력을 장비나 병력 숫자로만 따져왔다. 하지만 유사시엔 북한군 장성들의 전쟁 의지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북한군의 성격은 사실상 김 씨 일가를 지키는 가병(家兵)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병 조직도 주인에게 충성할 이유와 사기가 있어야 싸우는 법이다. 군이 아니라 심지어 세상 어느 마피아 조직도 김정은처럼 안하무인으로 인사를 하게 되면 중간 보스들이 배신을 하는 법이다. 그래서 유사시 북한군 일선 사단, 군단 지휘관들이 김정은을 위해 과연 목숨 바쳐 싸울지가 매우 궁금해진다. 끝으로 아래에 김정은 시대 북한 군부 3대 핵심 요직의 변화를 정리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 군부 3대 핵심 요직 변화
총참모장

이영호 (2009년~2012년 7월) ※2012년 7월 숙청
현영철 (2012년 7월~2013년 5월) ※ 2015년 4월 반역죄로 공개처형
김격식 (2013년 5월~2013년 8월) ※ 2015년 5월 사망
이영길 (2013년 8월~2016년 2월)
이명수 (2016년 2월~2018년 6월)
이영길 (2018년 6월~2019년 9월)
박정천 (2019년 9월~2021년 9월)
림광일(2021년 9월~)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2009년 2월~2012년 4월)
김정각 (2012년 4월~2012년 11월)
김격식 (2012년 11월~2013년 5월)
장정남 (2013년 5월~2014년 6월)
현영철 (2014년 6월~2015년 5월)
박영식 (2015년 6월~2018년 6월)
노광철 (2018년 6월~2019년 12월)
김정관 (2019년 12월~2021년 7월) ※2020년 국방상으로 변경
리영길 (2021년 7월~)

총정치국장

최룡해 (2012년 4월~2014년 4월)
황병서 (2014년 4월~2018년 4월)
김수길 (2018년 4월~2021년 1월)
권영진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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