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일방적 입법 추진… 유엔 등 국제사회까지 우려 표명
선거 앞두고 ‘독주 프레임’ 부담… 靑 신중론에 강경파 입지 좁아져
“언론재갈법 통과땐 대장동 묻혀… 언론기능 위축 안돼” 목소리도 한몫
언론중재법 논의를 한 달 넘게 이어온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 방침에서 물러선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독주 프레임’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등 국제 사회가 우려를 나타냈고 진보 단체들까지 반대하는 상황에서 입법 폭주를 이어갈 경우 내년 대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는 것. 이를 의식한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주문하면서 당내 강경파들도 주장을 고수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장동 개발 의혹을 둘러싼 보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권력형 비리를 견제하는 언론의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도 한몫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29일 여야가 국회 특위를 구성해 12월 31일까지 추가로 논의하기로 해 연내 처리는 사실상 멀어졌다. 핵심 쟁점인 징벌적 손해배상 및 열람차단 청구권을 놓고 여야가 극적으로 이견을 좁힐 가능성이 낮고 내년 대선이 임박해 여당이 단독 처리에 나서기도 부담이어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처리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의총서 ‘친문’과 ‘친명’ 충돌
지난달 말 여당이 국회 본회의 처리를 미룬 뒤 여야는 언론중재법 처리를 놓고 한 달 가까이 논의를 이어왔다. 민주당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이날 세 차례의 최고위원회의 끝에 “언론중재법을 금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연이어 최고위를 가졌지만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강경론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맞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민주당 의총에서는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듯 친문(친문재인) 진영 의원과 여권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 의원들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가해자인 보수 언론과 야당이 피해자가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친문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4.0’의 이사장인 도종환 의원과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 등도 “시간을 두고 숙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개혁이 중요하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강행하기는 부담스럽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강행 처리 의견의 상당수는 이재명 캠프 소속 의원들에게서 나왔다. 이재명 캠프의 선임대변인인 박성준 의원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기관은 검찰과 언론”이라며 “이번에 입법하지 않으면 대선도 어렵고 다음 정부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지사 측이면서 ‘박병석(국회의장) GSGG’ 욕설 논란을 일으킨 김승원 의원도 강행 처리에 무게를 실었다. 22명이 발언하면서 양측이 팽팽히 맞서자 결국 의원들은 최고위에 결정을 위임했고 최고위는 한발 물러섰다.
○ 민주당 입법 폭주 일단 멈춤
앞서 7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열람차단청구권 등을 놓고 국제사회에서도 우려가 계속됐지만 민주당은 문체위에 이어 법제사법위원회에서까지 일사천리로 법안을 단독 처리했다.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를 눈앞에 둔 지난달 31일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여야는 언론중재법 ‘8인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지만 합의안 도출에 이르지 못했다. 이어 새로운 특위 구성으로 사실상 연내 처리는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일단 멈춰 섰지만 강경파를 중심으로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당내 주도권 다툼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다음 달 중순으로 다가온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이 끝나면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주장하는 강경론이 다시 분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는 ‘친문 진영’은 있어도 ‘친명(친이재명) 진영’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후보가 선출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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