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0월 27일 “음식점 허가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이 후보는 이내 “당장 시행한다는 것은 아니고,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며 거둬들였지만, 그사이 수많은 화살이 꽂혔다. 특히 국민의힘에서는 이 발언에 대한 이념적 규정이 잇따랐다. “전체주의적 발상”(윤석열)도 있었고, “표퓰리즘 증오 정치의 발현”(홍준표), “극좌 포퓰리즘”(윤영석) 등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다.
전체주의·포퓰리스트·좌파 모두 틀렸다
이러한 비판이 정확한 걸까. ‘전체주의’의 전형은 북한식 독재다. 독재하에서도 복수 정당이 보통선거를 통해 경합해서 의회를 구성하는 체제는 ‘권위주의’라고 불러야 알맞다. 유신 시기를 빼면 독재시대에도 북한과 크게 달랐던 한국 체제가 음식점 허가총량제 따위에 전체주의로 기울겠는가. 너무 지나친 공격이다.
‘포퓰리즘’도 문제 본질을 비켜나간다. 포퓰리즘은 사회를 ‘엘리트 대 대중’으로 나누고 엘리트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아 대중을 단결케 한다. 그러나 음식점 허가총량제가 도입될 경우 그것에 가로막힐 이들은 엘리트가 아니다. 노동시장 진입이 여의치 않아 자영업을 고민하는 서민이고 청년이다. 반면 총량제가 실시되기 전 유예기간에, 음식점이 폐업하는 사이사이에 뻗어나갈 쪽은 규모 있는 자본이다. 국가 규제로 자본이 당장에 덕을 보는 ‘포퓰리즘’도 있나.
이 후보에게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더더욱 틀렸다. ‘대장동 개발’이 어디를 봐서 좌파적인가. 현대 정치에서 좌파는 ‘분배’를 추구하고 ‘자본’보다 ‘노동’을 중시한다. ‘생태(환경)’나 ‘성평등’ ‘참여민주주의’ 같은 기치를 든 ‘신좌파’도 있다. 대장동 개발에서 임대주택은 축소됐고, 송전탑은 지하화를 피해갔다. 뚜렷한 건 화천대유자산관리 등의 천문학적 이익뿐이다.
이 후보의 정책 근저에 깔린 이념을 굳이 꼽으라면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들겠다. 이는 국가가 자본가 역할을 대신하는 ‘국가자본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자본은 경쟁을 거쳐 집적·집중되면서 독점자본을 형성하는데, 이 독점자본을 국가권력이 떠받치고 봉사하는 것이 국가-독점자본주의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본디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학에서 나온 단어로, 낡은 개념이라고 볼 수는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딱 들어맞는 현실 체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국가권력이 민주화되고 사회가 다원화된 한국 현황이나 가능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다만 공공이 특정 자본의 배타적 이익을 보장했다는 차원에서 최소한 포퓰리즘, 사회주의, 좌파보다는 훨씬 어울린다.
자본의 이권 추구에 정치권력이 결탁하는 풍경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국민의힘이 이 후보를 한국 정치의 주류 경향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로 치부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써 이 후보나 소위 진보 진영을 자신과는 다른 부류로 놓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관계는 원수보다 형제에 가깝다. 이것은 양당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전반에 적용되는 이치이기도 하다.
박정희에 자유롭지 않은 86세대
민주당 비판자 일부는 민주당 정권의 독선과 독주를 두고 ‘학생운동권에서 학습한 민중민주주의의 영향’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이는 중대한 이치를 간과한다. 198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정치의식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대학에서 만난 학생운동일까, 청소년기를 지배한 박정희 시대일까.
86세대를 깨어나게 한 사건은 1980년 5·18민주항쟁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총을 쏴서는 안 된다”는 비분강개로 그들은 가장 전면에서 독재정권에 맞섰다. 다만 그들의 지향이 온전히 민주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대학가를 풍미한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는 ‘해방’과 ‘민주’와 거리가 있다. 양측은 각각 북한 주체사상과 레닌-스탈린주의, 그러니까 독재적 이념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나 유럽에서 강한 사회민주주의를 제쳐두고, 왜 하필 ‘또 다른 독재’ 이념의 영향을 받았을까. 이것은 그들의 어린 심신을 통치하던 박정희 정권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가난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유예하자는 발상은 소련, 북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 이데올로기이자 멘털리티였다. 민주화를 외친 시민 중에도 민주주의가 몸에 익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학생운동의 주류 경향이 NL이던 배경도 박정희 시대에 있다. 그 시대에는 반공뿐 아니라 반일, 나아가 반미까지 고취됐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운다는 측면에서 박정희주의와 NL은 빼닮았다. “한 세대의 생명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은 영원하다”(박정희)는 말은 북한에 소개해도 긍정적 반향이 있을 만하다.
다음은 대학가 바깥을 보자. 정경유착 아래 특권층을 형성하면서 ‘개발 속도전’을 치렀던 박정희 시대다. ‘불평등’보다 ‘성장’에 주목하던 시간을 보낸 세대에게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국민의힘 계열 정치인에 국한될까. 대장동 공사 현장을 방문한 이 후보의 모습도 그 유사한 사례다. 그것은 ‘어찌 됐거나 삽을 떴고 건설은 이뤄지고 있다’고 웅변하는 이벤트였다. 요즘 나도는 신조어 ‘이재명박’은 이쪽저쪽 할 것 없이 ‘하면 된다’에 젖은 한국 사회를 비추는 단어일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 쪽이나 국민의힘 계열 모두 자신과 상대의 뿌리 깊은 문제를 모른 척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시대에 뒤떨어진 ‘독재 후예’로 간주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새로운 문제를 몰고 온 재앙으로 여겼다. 하지만 양측 다 여전히 박정희주의의 그림자인 ‘대자본과 공공의 결탁’에서 자유롭지 않다. 두터운 공통분모가 양 세력과 국민의 발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진보 대 보수’ ‘좌파 대 우파’ 같은 구도는 상대방과 차별화를 위해 편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구도에 의존해 하던 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공통의 문제를 극복하고 ‘앞으로’, 또 ‘아래로’ 나아갈 것인지, 이번 대선의 승패보다 더 중요한 주제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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