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반대 세력 끌어안기로 첫 지방 행보를 시작했다. 윤 후보는 광주를 방문해 ‘전두환 옹호’ 발언을 사과하며 성난 호남 민심을 달래면서 화해와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냈다. 대선 링에 오른 후 당심에 못 미친 민심 잡기에 다시 시동을 건 모양새다.
전날 광주 5·18묘지 앞에서 묵념과 사과를 했던 윤 후보는 다음날인 11일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거쳐 경남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1박2일간 동서(東西)를 횡단하는 이같은 강행군은 국민대통합 의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중도층과 진보층을 포섭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외연확장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최근 컨벤션 효과로 윤 후보가 텃밭인 영남권 뿐만 아니라 부동층이 많은 서울과 수도권 등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기는 여론조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호남에선 이 후보에게 50% 이상의 큰 격차로 절대 열세라는 점에서 그의 광주 사과 방문은 ‘험지’에서 확장성을 강화해 지지율을 제고하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윤 후보의 호남행은 지난달 부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을 제외하면 정치를 잘했다고 평가하면서 실언 논란이 불거진 지 22일 만이다. 당내 경선을 마치기도 전 이미 예고된 일정으로 전격 행보가 아니어서 이벤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윤 후보가 대선 링에 오른 뒤 첫 지방행보로 험지인 호남을 가장 먼저 찾은 건 ‘5·18 사과’만이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는 현실적 판단 외에 향후 ‘전두환 옹호’ 발언을 두고 집중포화가 예상되는 여권의 화력을 사전에 약화시키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초박빙 접전이 예상되는 대권 싸움에서 리스크를 회피하는 대신 정면돌파로 국면을 타개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일각에서 광주 방문을 두고 정치 자작극이라는 비판에 대해 윤 후보는 “저는 쇼는 안 한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면서 “이 순간 사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처받은 국민, 특히 광주 시민 여러분께 이 마음 계속 갖고 가겠다”고 한 다짐했다. 호남 구애의 진정성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 후보가 호남 정치를 대표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목포에서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를 찾아 ‘DJ정신’을 계승하고 국민통합 메시지를 낸 것도 당 차원에서 공을 들이는 서진(西進)정책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호남으로의 외연확장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김대중 정신하면 가장 먼저 내세울 것이 국민통합”이라며 “대통령이 되셔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분들을 다 용서하고 IMF 국란을 극복하는 데 국민 통합이라고 하는 큰 밑그림으로 국난 극복을 해내셨다”고 평가했다. 호남 방문을 격렬히 반대한 시위에 대해 윤 후보는 “저를 반대하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다 존중하고, 제가 차기 정부를 맡더라도 저를 반대하는 분들을 다 포용하고 국가정책을 펴나갈 것”이라고 했다.
호남 출신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통합을 어떻게 할 건지 메시지를 이번에 국민께 확실하게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기(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서 마무리를 지은 것”이라며 “화해와 용서로 국민통합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김대중 기념관에 와서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후보가 광주 ‘5·18행보’에 이어 목포 ‘DJ정신’ 계승으로 호남에서 반윤(反尹·반윤석열)‘ 민심을 얻는데 공을 들였다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노무현 정신을 기리는 행보로 탈문(脫文·탈문재인) 진보층을 공략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날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윤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신, 또 특히 우리 젊은층 청년세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이고 소탈하고 서민적이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대통령이셨다”며 ’노무현 정신‘을 평가했다.
비록 권양숙 여사가 화답하지 않았지만 예방을 추진한 것만으로도 반대 진영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먼저 취해 윤 후보가 국민통합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두 분 다 통합을 강조하셨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특히 소탈하고 서민적이면서 기득권과 반칙, 특권 이런 것과 많이 싸우셨다”며 “국민 통합이라는 게 용서해야 통합도 있지만 부당한 기득권을 타파함으로서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두 분에게 이런 정신 잘 배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에서는 윤 후보의 외연확장 노력에 대해 “윤석열 후보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행보는 중도외연 확장성과 국민통합성을 크게 키울 것”이라는 자평을 내놓았다. 일단 호남 행보로 윤 후보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친(親)호남 행보 속에서도 진영 논리에 갇힌 문재인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 야당 대선주자로서 선명성도 강조했다는 것이다.
윤 후보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부터 한·일 관계 개선을 시작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DJ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일본과의 관계가 냉랭한 현 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문재인 대통령은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국민 여러분께서 판단하실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통‘을 자임하고 있는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어 말을 아낀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계인 장성민 전 의원은 ’이번 윤 후보의 광주, 김대중, 노무현의 정치적 라인업은 국민대통합을 위한 합리적 중도정치의 첫걸음으로써 정권교체를 바라는 확장세를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며 ”정권교체의 세확산으로 연결될 것인 반면에 동시에 제 3후보들의 세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전 의원은 ”특히 서울출생인 그가 충청지역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영호남의 화해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좋은 정치적 캐릭터로 익힌다“며 ”민주화 투쟁 경력이 부재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재명 후보로부터 고개를 돌린 광주호남의 민심과 중도층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