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부산 스타트업·소셜벤처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재미있긴 한데, 강남 같지는 않은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이라고 부연했다. 일하고 놀고 쉬기에 부산의 여건이 서울 강남에 비해 부족하다는 의도였겠지만, 지역 폄하 발언으로 알려져버렸다. 억울할 일이다.
“요만한 걸로 이만하게 만들고”
이튿날 이 후보는 대응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거리를 초래했다. 그는 “나는 어디 가서 말실수 하나 안 하려 노력 중인데, 요만한 걸로 이만하게 만들고, 다른 쪽은 엄청나게 문제가 있어도 ‘노코멘트, 나 몰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누군가가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을 세 차례 낙선시키고, 2002년 대선에서마저 1위 득표의 영예를 주지 않았던 부산지역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자서전 ‘운명이다’의 한 대목이다.
“부산은 넉넉하고 개방적이어서 젊은이들에게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도시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부산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다.”
아무리 그 지역이 힘겹고 어려워도 재미를 찾는 사람은 숱하다. 분투하며 길을 내다 보면 지역의 강점과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경기’도지사 출신으로 외부자인 이 후보가 ‘강남’까지 거론하며 대조하니, 비수도권은 물론 서울 강북 지역민에게도 곱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재미없잖아”라는 표현은 구체적인 문제점을 짚지 못하고 총체적이면서 근본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그래도 재미있다”고 느낀 시민과 스스로 “재미없다”고 한숨을 쉰 시민 모두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언행을 복기해봤나. 윤 후보의 전두환 옹호 논란을 보라. 여기도 ‘지역 문제’가 깔려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는 발언도 문제였지만,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이 꽤 있다”는 말이 파문을 결정적으로 키웠다. 이 후보는 ‘윤 후보 발언은 나와 달리 나쁘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지역 문제를 건드리는 것 자체를 엄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이 후보는 자신에 얽힌 설화가 점점 커지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헌데 여기서도 윤 후보와 공통점이 있다. 설화가 하나의 궤도를 굵직하게 그렸다는 점이다. 윤 후보의 대표적 설화는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더라.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 “손발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등이다. 장시간 노동자, 유해환경을 걱정하는 시민, 지구촌 주변부 빈민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비쳐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형성했다. 구설이 거듭되면 대중은 “보자 보자 하니까”라며 분개하게 된다. 이를 배경으로 ‘전두환’까지 등장하니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이 후보가 빠진 논란도 비슷하다. “음주운전 경력자보다 초보운전이 더 위험하다”는 발언은 음주운전에 고통받거나 경악하는 시민을 덮친다. “‘오피스 누나’? 제목이 확 끄는데요?”는 여성의 대상화나 성폭력으로, “부산 재미없잖아, 솔직히”는 지역 간 불평등으로 연상 작용이 이어진다. 여기에 ‘음주운전 등 전과’ ‘거세게 공격했거나 크게 불화한 상대가 여성’ ‘수도권 정치인’이라는 본인의 특징이 연결되면서 두꺼운 악재가 됐다.
이 후보는 윤 후보가 전두환 논란 직후 대응을 잘못했다는 데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도 줄곧 잘못 대응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언론 탓을 하고 있다. 해당 대응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뜻으로 확장돼 수용된다면 시민은 언론사가 아니라 자신을 탓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언론이 거두절미했다? 이를 윤 후보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라. 그렇게 따지면 윤 후보도 “내가 주120시간 노동을 보장하자고 주장하진 않았다. 그건 남의 말을 옮긴 것”이라고 억울해하고 말 일이다.
설화 시발점은 언론 아닌 정치인
“확 끄는데요”에 대한 수습은 설상가상이었다. 여러 사람은 “‘오피스 누나’라는 제목에서 야설(야한 이야기)을 떠올린 거냐”고 의심했고, 이 후보는 “선정성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해명했다. 이건 ‘나는 여러분이 의심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라는 뜻이 아니다. ‘그 생각을 하긴 했다만, 따져 물은 말이었다’로 해석된다.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도 모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장 관계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이 후보는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전두환 옹호’ 수준의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라고 항변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논란 당시 자신이 놓은 덫도 있다. 5·18민주항쟁의 일원으로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유족 및 종친은 윤 후보의 사과와 방문을 받아들였다. 윤 후보의 발언에 분노한 시민이 다들 ‘윤 후보가 전두환을 존경한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후보는 10월 22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전두환 비석’을 밟으며 “윤 후보는 왔어도 존경하는 분이니 못 밟았겠네”라고 비난의 최선두에 섰다. 상대 내면을 재단했던 그 잣대가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작금의 언론 생태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그 운동장은 특정 인물이나 당파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것이 아니라, ‘대선주자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렇게 된 연유도 불합리한 것만은 아니다. 유력 대선주자의 말도 유력 언론이다. 일개 언론사 가운데 이를 당해낼 힘과 기술을 가진 곳은 없다. 다만 그들이 미래 권력이기에 시민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런 여론 위에 언론 생태계 전체가 움직일 뿐이다.
피해자나 약자, 소수자를 폄하하거나 쓸데없이 특정 계층을 자극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원인은 정치인 본인에게 있다. 옳든 그르든 언론은 금세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다. 상대 악재를 즐기지 말고 자신을 돌아봐야 하며, 때로는 악의적 공세에 시달리는 타인이나 적수도 변론할 줄 알아야 한다. 대중은 언제나 이런 정치인을 기다린다. 이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던 건 정치인 자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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