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지난 10월26일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애증 관계다. 삶의 전반기에는 ‘쿠데타 동지’였고, 후반기에는 정적이었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11기 동기생으로, 1959년 미국 특수전학교 교육을 함께 받고 1970년 베트남 전쟁에도 함께 참전하는 등 남달리 가까웠다. 노 전 대통령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핵심 일원이었고 전 전 대통령은 회장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군사쿠데타의 주도한 수괴였고, 당시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전방에 주둔하던 자신 휘하의 29연대를 후방으로 이동시켜 서울을 장악하는 ‘수훈’으로 5공화국의 2인자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5공화국에서 육군 대장, 장관, 올림픽조직위원장, 여당 대표 등을 지낸 뒤 6·29선언을 주도하고 차기 대통령에까지 오른다. 전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인 1986년 7월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에게 “자네는 일생동안 나와 함께 지낸 일등 참모장”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 급격히 경색됐다.
자신이 신군부의 핵심 일원이었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차별화가 필요했던 노 전 대통령은 국정기조의 하나로 ‘5공 청산’을 내걸었고,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1988년 3월 전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 구속을 시발점으로 2년여간 ‘5공 비리 정국’이 지속됐다.
궁지에 몰린 전 전 대통령은 1989년 11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강원 인제의 백담사에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출범한 5공비리특별수사부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차규헌 전 교통부 장관, 김종호 전 건설부 장관 등 5공 인사 47명을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서 ‘노태우가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나한테 귀XXX 맞는다’라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7년, 전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반란수괴·상관살해·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재판에서 징역 17년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 선고공판 법정에 나란히 선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손을 잡은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그해 바로 석방됐다. 그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로 공개 활동이 없었고, 아들 노재헌씨가 5·18광주민주화운동 책임을 사과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고(故) 조비오 신부 비난 등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적반하장식 태도로 일관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망 한 달여 전인 지난 10월26일,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조문은 이순자씨와 전재국씨가 대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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