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제와 관련해선 ‘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잡은 대통령’과 ‘3저 호황 덕을 본 대통령’이라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1979년 10·26사태와 2차 석유파동으로 1980년 물가 상승률은 28.7%, 실업률은 5.2%로 치솟았다. 그해 경제 성장률은 ―1.6%였다. 저성장, 고물가, 경상수지 적자의 3중고에 시달리던 한국 경제는 1980년대 후반엔 10%대 성장, 물가 안정, 국제수지 흑자의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당시 착수한 전국 고속통신망 개설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토대가 됐다.
시장 기능을 중시하고 김재익 경제수석 등 전문 관료를 등용한 용인술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전 전 대통령이 김 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경제를 맡겼다는 일화는 널리 회자되는 사례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생전에 동아일보 기고에서 1980년 9월 발표된 ‘경제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 “안정, 능률, 개방, 경쟁, 민간 주도 등을 내세우고 있었고 여기에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김재익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라고 했다. 1980년 30%에 육박하던 물가를 4년 만에 2.3%로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예산 동결과 공정거래법 제정을 통한 독과점 단속 등의 구조 개혁이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스포츠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1986년 아시아경기와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고 프로스포츠를 육성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3S 정책(스크린 스포츠 섹스)’의 일환으로 스포츠를 이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프로야구에 이어 1983년 프로축구, 프로씨름 등이 차례로 출범하면서 우민화 논란 속에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물밑작업을 했던 이용일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90)은 “청와대에서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 출범을 구상했다”고 회고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MBC의 원년 개막전에 시구자로 나섰다. 시구를 받은 MBC 포수 유승안이 공을 전달하러 전 전 대통령에게 달려가자 야구장 곳곳에 포진해 있던 무장 경호원들이 그를 막아서는 해프닝도 있었다.
육사 시절 골키퍼로 뛰었던 전 전 대통령은 체육인들을 종종 청와대나 자택으로 불러 격려하고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에게 큰 액수의 금일봉을 주기도 했다. 박종환 전 축구 대표팀 감독(83)은 “청와대 들어갈 때 검문도 받지 않았다”며 “동대문운동장에서 국제경기를 하고 있을 때 직접 찾아와 전반전 끝나고 작전과 관련된 한두 가지 지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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