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 보다 한반도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기류가 굳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점잖은 무시’(benign neglect)로 결국 미중 간 패권 경쟁 대응으로 북한에 외교역량을 배분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5일 “북한과의 외교적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야심이 부족해 일부 한국인들은 트럼프의 화려한 정상회담을 그리워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의외성 넘버 원’이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유의 ‘이벤트성’ 대북정책 추진으로 지난 2018년 한반도는 냉온탕을 오가기도 했다. 그는 그해 5월 북미 정상회담 취소 기자회견을 갑자기 열었다가 결국 이를 번복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은 한 달 뒤에도 이어졌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첫 정상회담 뒤 우리 측과 사전 조율 없이 ‘한미훈련 중단’을 선언해 상당히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와 함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 및 플러스 알파’를 요구하며 결국 회담 결렬로 귀결됐다. 일련의 선례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사안에 무지했다는 걸 드러내는 선례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외신에서 왜 ‘한국인들이 트럼프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나온 것일까.
지난 1월 출범한 바이든호는 약 100일만에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을 기치로 내건 대북정책을 발표하며, 대북 접근법에 있어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6월 ‘미국과의 만남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은 후 계속해서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재가동 정황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고 있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에도 평안남도 강선 핵시설, 황해북도 평산 소재 우라늄 광산과 정련시설 등에서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전제 조건 없는 대화’, ‘대북 적대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한이 대화 재개 조건으로 언급하는 ‘대북적대 정책·이중기준 철폐’ 등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자세는 삼가고 있다.
동시에 동맹국 한국과 한국전쟁(6·25전쟁) 종전선언 추진 등 긴밀한 대북공조를 이어오고 있지만 협의의 ‘마침표’를 찍고 어떠한 사안을 적극 추진하는 모습은 사실상 보이질 않는다. 일각에서 “동맹국이기 때문에 얘기를 일단 들어주는 것”이라는 한미 공조를 평가 절하하는 목소리가 감지될 정도다.
전 미 중앙정보국(CIA) 수미 테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FT에 “(바이든) 행정부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그들의 대북정책은 정말로 점잖은 무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들로 어떤 돌파구(모색)에 대한 희망도 포기한 것 같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전략적 인내’ 대북정책을 펼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점잖은 무시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와 자신들이 비교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 상황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던 전략적 인내 형식으로 가는 것은 맞다. 지난 1월 핵무기 고도화를 밝힌 북한 입장에서 일련의 상황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경제, 인종, 양극화 문제 등 국내문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최대 변수를 안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라며 “우선 북한의 핵무기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수준 등에서 봤을 때 미 본토에 아직은 직접적인 위협이 안 된다는 판단, 그리고 미 본토에 준하는 주한·주일미군 기지에도 북한이 직접 타격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일단은 긴호흡으로 상황 관리를 하며 대북제재 유지를 통해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노리고 있는 듯”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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