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 대선주자들도 차기 정부의 조직개편 구상에 돌입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인수위 과정 없이 출범했던 만큼 사실상 10년 만의 정부조직 개편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4차 산업혁명 등 전례 없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정부 운영체제(OS)의 전면 업데이트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는 한국행정학회(회장 박순애 서울대 교수)와 함께 차기 정부 구상을 위한 학회 소속 전문가들의 대안과 제언을 들어 봤다. 이와 관련해 한국행정학회는 9일부터 이틀간 서울 LW컨벤션센터에서 ‘행정환경의 변화와 미래 정부의 재설계’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진행한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최근 세계 최초로 ‘가능성부(Ministry of Possibilities)’라는 플랫폼 형태의 가상 부처를 신설했다. 기존 법이나 행정 체계로 다루기 어려운 전례 없는 사회 문제 및 미래 먹거리 과제가 이어지는 만큼 기존 부처 간 칸막이를 완전히 없애 버린 전혀 새로운 형태의 부처에 전 공무원이 참여해 해결 방안을 고민하자는 일종의 ‘실험’이다.
한국도 다음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 같은 사회 변화 및 기술 흐름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부처 전면 리모델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부처 간 중복되는 기능은 과감하게 통폐합해 ‘옥상옥’ 구조를 탈피하고,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및 4차 산업혁명 등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정부 운영체제(OS)의 전면 업데이트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한국행정학회와 함께 2일부터 6일까지 대학과 국책연구소, 정부기관 및 민간연구소 소속 회원 436명을 대상으로 ‘전환기 정부 OS혁신과 미래 정부 디자인’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차기 정부 조직개편의 가장 핵심 이슈로 ‘4차 산업혁명 대비’(25.39%)가 가장 많이 꼽혔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혁신을 전담할 수 있는 ‘미래전략기획부’의 신설 및 국가 차원의 데이터 관리를 위한 ‘미래전략데이터처’ ‘데이터청’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차기 정부의 부처 조직개편 전략으로 전문가들은 부처 간 중첩되는 기능의 최소화(66.59%)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능 축소 등 전면 재편이 가장 시급한 부처로는 여성가족부가 1위로 꼽혔다. 성평등 등 젠더이슈가 더 이상 여성가족부로 국한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 겹치는 업무는 보건복지부나 고용부로 업무를 이관하는 한편 문재인 대통령의 당초 공약처럼 대통령 직속 위원회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인구감소 대비한 이민부 시급… 기후에너지부도 만들어야”
美, 백악관에 ‘에너지부서’ 만들고… 伊, 에너지+환경 ‘생태전환부’ 등 시대변화 반영해 발빠른 조직개편 韓, AI-포스트 코로나 대응하고… ‘MZ세대 공무원’ 맞춘 재설계 필요 부처간 중복된 기능 재조정… 기재부 예산권 분리 의견도 나와
차기 정부 개편 방안 설문에 참여한 한국행정학회 회원 436명은 차기 정부 조직 개편에서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방향으로 ‘4차 산업혁명 대비’(25.39%)를 꼽았다. 이어 최근 요소수 사태 및 미중 무역 갈등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대내외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응답이 21.38%로 뒤를 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및 사회 양극화 문제 등을 고려해 ‘사회적 위기로부터의 회복 탄력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16.70%였다.
○ 빅데이터·인구전담·기후위기 부처 필요
특히 ‘차기 정부에 신설해야 할 부처’를 묻는 주관식 설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많은 63명이 ‘디지털 혁신 전담 부처’를 제안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 도입을 활성화할 ‘미래전략기획부’ 및 데이터 관련 업무를 관장할 ‘미래전략데이터처’ ‘데이터청’ 등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석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범정부 차원에서 데이터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고 관련 기관 간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공부문 최고데이터책임자(CDO)’제도를 조기에 도입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부처 신설도 32명이 추천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기후변화에 전면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부서(Energy Division)를 백악관 내에 신설했다. 이탈리아도 올해 2월 친환경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이전까지 경제 부처에서 담당하던 에너지 정책과 환경부 소관의 환경 관련 업무를 통합한 ‘생태전환부’를 출범한 바 있다. 한승준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프랑스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를 합한 형태의 생태포용전환부가 국토·교통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며 “한국도 환경부 국토부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련 기능을 통합하는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해 기후변화 대응을 전담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설문에 응답한 전문가 23명은 인구절벽에 대응하기 위한 인구 정책을 총괄하고 이주 외국인 및 난민 급증에 대비하기 위한 이민부 또는 이민청, 다문화청 등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밖에 △경제안보 △지역균형발전 △항공우주 △정부 부처 갈등 조정 △규제완화 △위기대비 및 재난 관리 전담 부처 등도 신설이 필요한 부처로 꼽혔다.
○ 부처 간 ‘옥상옥’ 구조 철폐해야
반면 “기존의 부처로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141명에 달했다. 부처 신설이 반드시 문제 해결을 보장하지 못하는 만큼 무작정 새로 만들 게 아니라 기존 부처의 기능과 구조를 재편해 제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현 정부 부처 중 통폐합 및 기능 축소가 시급한 곳으로는 여성가족부(60.36%)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교육부(30.73%), 통일부(22.27%), 중소벤처기업부(17.59%), 기획재정부(14.03%) 순이었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이미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과 중첩되는 기능이 많은 만큼 보건·고용·가족 업무를 분리해 통합하는 한편 양성 평등 등 젠더 이슈는 범부처 성격으로 기능을 분산하자는 제안이다. 통일부의 경우도 대북정책은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를 맡아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이 공동 대응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경제 부처도 대표적인 손질 대상으로 꼽혔다. 최근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를 둘러싼 당정 갈등으로 논란이 된 기재부의 경우 예산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 예산이 600조 원을 넘는 시대에 예산실장 한 명이 지나치게 큰 권한을 갖는다”며 “예산 기능을 분리하고 다른 부처 파견직이나 개방형 임용직, 대통령이 임명한 외부 인사 등을 늘려 열린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산업통상자원부로 중복 기능을 이관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5년에 한 번씩 단순히 부처의 이름과 간판만 바꾸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며 “4차 산업혁명 및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고 ‘MZ세대’ 공무원 등판에도 발맞추는 미래형 정부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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