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9일 “우리나라가 아시아 지역에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함께 이뤄낸 성공적인 경험을 토대로 민주주의 증진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11분부터 11시23분까지 청와대 여민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최로 개최된 ‘민주주의 화상 정상회의’ 본회의(Leader‘s Plenary) 첫 번째 세션 참석 발언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바이든 대통령 주재로 9일부터 이틀 간 진행된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호주·일본·인도 등 총 112개국 정상이 참여한다. ▲권위주의 대항 ▲부패 척결 ▲인권 보호 3가지 의제를 논의한다.
문 대통령은 이 가운데 회의 첫 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본회의 첫 세션에서 12개국 정상과 함께 발언자로 참여했다. 문 대통령은 이와는 별도로 사전 녹화 방식으로 진행된 별도의 발언 형태로 다른 세션에 추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날 첫 세션에서 문 대통령은 “인류가 민주주의와 함께 역사상 경험한 적이 없는 번영을 이뤘지만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가짜뉴스, 혐오와 증오 등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낼 방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확고히 보장하되, 모두를 위한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며 “가짜뉴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킬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표현의 자유 보장 조건으로 ’모두를 위한 자유와의 조화‘를 내세운 것은 청소년 방역패스 시행 과정에서 백신 접종에 대한 반발이 거센 배경에 불안감을 조성하는 가짜뉴스가 있다는 문제 인식으로 해석된다. 현재 진행형인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가짜뉴스 척결을 국제사회 화두로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회의 종료 하루 뒤인 10일 오후 문 대통령의 발언 전문을 공개했다. 전날 박 대변인이 옮긴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없던 내용이 다수 담겼다. 문 대통령은 강한 톤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역설하고, 국제사회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한때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웠다고 생각했고, 더이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진부한 일이라고 여겼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안이하거나 오만한 생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며 성장했지만, 나라 안팎의 권위주의는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성찰했다.
그러면서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들 안에서도 포퓰리즘과 극단주의가 커지고 있다. 번영과 함께 커지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사회의 통합을 가로막고, 사회·경제적 위기를 키우고 있다”면서 “가짜뉴스가 진실을 가리고,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심지어 방역과 백신접종을 방해해도 민주주의 제도는 속수무책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이라고 할 만하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부정부패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며 “청탁금지법, 이해충돌방지법, 공익신고자 보호제도 등 한국의 반부패 정책 성과를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개도국과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나누겠다”고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국이 반세기 만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극복하면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이룩해 냈다”며 “거듭되는 권위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한국 국민들은 많은 숭고한 희생을 치렀고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 국민들은 지금도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공감하고 있다”며 “한국은 세계의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 선도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재확인하고, 우리의 민주주의 경험과 성과, 정책을 공유함으로써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에 기여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이번 회의는 동맹국을 앞세운 가치 사슬로 대(對)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목적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참석이 향후 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이 중국을 직접 겨냥한 메시지를 자제한 것도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신중함으로 읽힌다. 미국 주도의 회의에는 참석하면서도 중국이 불편해 할 수 있는 메시지를 배제한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미·중 간 균형점을 찾으려 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개회사에서 “보편적인 세계인권 등을 볼 때 민주주의에는 옹호자가 필요하다”며 “정상회의 개최 이유는 민주적인 제도를 강화하는 데에는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상회의 개최 당위성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독재자들은 자신의 힘을 증진하려 하고,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또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글로벌 국제사회로서 우리를 단합시키는 가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정의·법치·자유로운 언론과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리고 모든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이라고 권위주의에 맞서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중국의 신장(新疆)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를 명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인권을 수호할 가치로 표현한 것은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문 대통령과 박 대변인을 비롯해 우리 측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형진 안보실 2차장, 김용현 외교정책비서관, 서상범 법무비서관, 외교부 국제기구국장, 인권사회과장 등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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