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9 대선을 75일 남겨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라는 변수가 떠오르면서 여야는 사면 이슈가 선거 판세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가 모두 겉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 결정에 찬성한다고 밝혔지만 그동안 “사과가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해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수사를 담당했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모두 후폭풍의 방향과 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전격 사면 결정에 당황한 與野
여야는 24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박 전 대통령 사면 결정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후보는 정부의 사면 발표 이후 2시간 뒤인 이날 오전 11시 30분경에서야 입장문을 통해 “(문 대통령의) 어려운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보다 앞서 출연한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제가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말씀드리기는 좀 부적절한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이 후보가 박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동안 그가 사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20일 언론 인터뷰에서도 “본인들의 사과와 잘못 인정 없이는 시기상조”라고 밝힌 바 있다.
윤 후보는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늦었지만 환영한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윤 후보가 국정농단 수사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 팀에서 박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사면 변수가 부담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박 전 대통령 형 집행정지를) 불허한 게 아니고 검사장은 형집행정지위원회 (결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라고 적극 해명한 것 역시 이 같은 인식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이양수 수석대변인 명의로 된 “환영한다. 국민의힘은 국민 대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35자 분량의 짤막한 논평만 내놨고 이준석 대표는 “다시 한 번 당 대표로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與野, 돌발 변수에 대선 판세 예의주시
여야 모두 박 전 대통령 사면이라는 돌발 변수를 맞닥뜨리면서 대선 판세에 미칠 영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열린민주당과의 통합, 과거 탈당 인사들에 대한 대사면 등 진보세력 결집에 집중하고 있는 민주당은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자칫 지지층 이탈로 이어질까봐 우려하는 눈치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5일 발표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1000명 대상 11월 2∼4일 실시,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진보 성향 유권자 중 71%가 전직 대통령 사면에 반대했다. 실제로 이날 민주당에서는 강성 인사들을 중심으로 “국민통합은 국민이 정의롭다고 판단해야 가능하다”(김용민 최고위원), “최순실도 풀어줄 것이냐”(안민석 의원) 등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가 이어졌다.
국민의힘의 최대 고민은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자칫 보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야권 관계자는 “윤 후보가 과거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수사를 담당한 검사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전통 지지층이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윤 후보에게 갖고 있는 은연한 반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사면이 윤 후보에 대한 책임론으로 번질 경우 지지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나 당내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이 직접적으로 윤 후보를 비판하거나 제동을 걸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도 정권교체에 대한 생각은 똑같을 것”이라며 “(이번 사면이) 대선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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