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 뉴스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가운데 국방과 방위산업에서 대단히 중요한 뉴스가 있었다. 12월 3~4일 방위사업청이 주최한 ‘국방과학기술대제전’에서 공개된 ‘한국형 극초음속 무기’에 대한 소식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국내 유력 방위산업체들과 함께 한국형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위해 수행한 첫 과제의 결과물이다. 국방과학기술대제전에서 ‘하이코어(Hycore)’라는 명칭으로 공개된 국산 극초음속 발사체의 생김새는 일견 미사일 같다. 엄밀히 말하면 미사일에서 탄두 등이 생략된 일종의 기술 실증용 기체다.
마하 5 이상 속도 장거리 타격
ADD에 따르면 하이코어에는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 중인 한국형 듀얼모드 스크램제트(Dual-Mode Scramjet) 엔진을 비롯해 관성항법장치, 비행제어시스템과 기동식 날개, 각종 비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복합 레이저 측정장치(TDLAS), 유동 정보 측정장치(FADS) 등이 적용됐다. 이러한 장치가 적용된 하이코어의 목표는 하나. 마하(음속) 5 이상 속도로 장거리 비행해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 개발 전 기술 검증이다. 연구진은 2022년 하이코어 첫 실물 모델을 완성해 시험발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서 모형 및 비행 영상 CG(컴퓨터그래픽)를 공개했으나 엄밀히 말해 한국형 극초음속 무기 개발은 이제 첫발을 뗀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내년 첫 비행에 성공하더라도 갈 길이 멀다.
한국형 극초음속 무기의 핵심은 스크램제트 엔진이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기술적 난도가 가장 높은 엔진 형태다. 현재까지 무기체계로 실용화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가 유일할 정도다. 미국은 2010년 초음속 순항미사일 X-51 웨이브라이더(Waverider)에 스크램제트 기술을 적용했지만 실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스크램제트는 제트 엔진의 한 부류인 램제트(Ramjet) 엔진의 일종이다. 일반 제트 엔진 ‘터보팬’이나 터보제트 엔진은 엔진 내부 팬(fan)과 터빈(turbine)으로 공기를 빨아들여 압축하고 뒤로 방출하는 방식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반면 램제트 엔진에는 팬과 터빈이 없다. 램제트 엔진의 램(ram), 즉 충각(衝角)은 기체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가 공기를 엔진 안으로 ‘들이박는다’는 뜻이다. 공기를 고속으로 이동시킨다는 의미에서 RAM(Rapid Air Movement)이라는 약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엔진을 만들어낸 이유는 오로지 고속 성능을 위해서다.
일반 터보팬·터보제트 방식은 엔진 내부 팬 블레이드가 마하 2 이상 고속 구간에서 충격파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공기 압축 효율이 크게 감소한다. 연비가 떨어질 뿐 아니라 가속도가 급감한다는 얘기다. 터보팬 방식을 사용하는 전투기는 대부분 최대 속도가 마하 3을 넘지 못한다. 반면 램제트 엔진은 마하 2~5에 달하는 고속 비행에 대단히 유리한 구조다. 엔진 내부에 팬·터빈 같은 구조물이 없어 고속의 공기가 곧바로 빨려 들어와 내부 충격파만으로 공기가 압축된다. 고속 비행에서 ‘연비’가 상당히 좋은 셈이다. 다만 팬과 터빈이 존재하지 않아 정지 및 저속 상태에서는 엔진 구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엔진 구동 요구 속도를 충족하기 위해 별도의 로켓 부스터를 달아야 한다.
속도가 새로운 스텔스
스크램제트 엔진은 이러한 램제트 엔진의 파생형으로, 마하 5 이상 속도에서 효율을 극대화했다. 기존 램제트 엔진은 흡입구로 들어오는 공기 속도가 마하 1.2 이상이지만, 엔진 연소실 내부 충격파로 속도가 줄어든다. 실제 연소 단계에선 마하 1 이하 아음속 상태에 머문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비행체가 마하 5 이하 속도를 유지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 이상 속도에선 탈이 난다. 엔진 연소실 내부의 충격파가 너무 커져 내부 압력과 온도 상승으로 엔진이 터질 위험성마저 있다. 스크램제트 엔진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안됐다. 엔진 내부에서 초음속으로 흐르는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 연소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이 때문에 스크램제트, 즉 ‘초음속 연소 램제트(Supersonic Combustion Ramjet)’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크램제트 구조는 대단히 단순하지만, 엔진 내부에서 초음속 연소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혹자는 스크램제트 엔진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해 “태풍이 극심하게 몰아치는 상황에서 성냥에 불을 붙이는 것만큼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스크램제트 기술을 미사일에 적용하는 것도 어렵다. 미세한 공기 변화에도 연소가 불안정하게 일어날 수 있어 비행체 방향·고도를 바꾸기 힘들다. 방향 전환 중 유입되는 공기에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엔진이 꺼지거나 아예 파괴될 수도 있다. 이처럼 개발이 어려우나 성공하면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스크램제트 엔진을 적용한 극초음속 미사일 3M22 지르콘(Zircon)을 개발해 실전 배치했다. 마하 9 속도로 비행하면서 자유자재로 항로를 변경할 수 있다. 사거리는 1000㎞급이며, 현재 개발 중인 추가 개량형은 20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최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도 ‘속도가 새로운 스텔스(Speed is the new stealth)’라는 표어를 내걸고 스크램제트 엔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다.
2022년 첫 비행을 앞둔 하이코어가 대단한 이유는 개발 속도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이 반세기 넘게 매달린 기술 개발을 한국 기술진은 20년 만에 주파했다. 2000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주도로 극초음속 공기 흡입식 추진기관 연구에 나선 이후 전력 질주한 것이다. 그 짧은 기간 스크램제트 엔진 설계를 마치고 첫 실증 발사체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 물론 첫 발사가 단번에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국 당국의 정책적 지원은 하이코어라는 결실을 거둔 것이 신기할 만큼 빈약하기 때문이다. 내년 하이코어 첫 발사를 앞두고 관련 예산과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효율 극초음속 비행을 가능케 하는 스크램제트 엔진은 요격이 불가능한 ‘무적의 창’의 토대가 된다. 전 세계를 1일 생활권으로 묶는 극초음속 여객기에도 적용할 수 있어 민간 항공산업 분야에서도 ‘게임 체인저’다. 제트엔진 불모지 한국에서 탄생한 하이코어 프로젝트가 앞으로도 비상하기 위해선 정부와 방산업계의 적극적인 협력 및 지원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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