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일자(현지 시간) 신문 1면에서 한국 사회에 페미니스트들에 분노한 젊은 남성들이 이끈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실제 길거리에서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시위대는 일부 극단주의 세력으로 무시되곤 하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증폭된 반페미니스트 정서가 한국 사회와 정치 어젠다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반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남성 혐오를 연구한 교수에 대해 대학에 강의 취소를 요구하는가 하면 도쿄올림픽 3관왕 안산을 짧은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등 페미니즘의 낌새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공격하고 있다”고 평했다. 또 더 나아가 이들이 손가락으로 남성 성기 크기를 조롱했다는 업체의 상품 보이콧에도 나서고 대선후보에게 20년 된 여성가족부 개혁 공약까지 이끌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평등에 민감한 젊은 세대, 반페미니스트 운동 이끌어
이 같은 현상에 대해 NYT는 “한국에서 자신들의 기회를 잠식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세력에 발끈하는 젊은 남성들이 몰고 온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올바름이 대두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페미니스트는 제 1의 적”이라며 특히 천정부지로 솟는 주택가격과 일자리 부족, 소득격차 등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NYT는 한국이 선진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는 점을 꼽으며 페미니즘을 둘러싼 반발이 당황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20%가 안 되고 상장 기업 이사회의 5.2%만 여성으로 미국(28%)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NYT는 그럼에도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이 자신들이 한국 땅에서 가장 위협받고 소외된 존재라고 느끼고 있다며 한국 20대 남성의 79%가 자신을 성차별의 희생자라고 본다는 설문조사 내용을 전했다.
“혜택 인정” 기성남성vs “역차별” 젊은남성
이 같은 페미니스트를 둘러싼 반발이 심해진 것은 이전 세대와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NYT는 설명했다. NYT는 한국 장년층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자신들이 여성보다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는 음식도 돈이고 풍족한 것 하나 없었지만 아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았던 반면 딸들은 남자들과 겸상도 하지 못했고 새로 태어난 아이 이름을 ‘마지막 딸’이라며 말자라고 짓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한국 사회가 부유해지면서 이런 관습은 옛 일이 됐다고 전했다. 여성의 대학입학이 남성보다 많고 다른 영역에서도 유리천장이라는 현실이 있긴 하지만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린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경기연구원 오재호 연구원은 NYT에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을 역차별의 대상으로 보고 이전 세대가 만든 차별에 자신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에 분개한다”고 말했다. 중장년 남성들이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본다면 젊은 남성들은 여성을 치열한 구직시장의 경쟁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NYT는 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군복무로 직업을 얻는 시기가 늦춰지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출산을 위해 직장에서 낙오하고 가정일의 많은 부분의 부담을 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대선까지 장악한 젠더전쟁
NYT는 젠더 전쟁이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싸움으로 여겨지는 대선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약 5년 전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만큼 여성의 권리는 인기 있는 의제였지만 지금은 주요 후보 중 누구도 여성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꼬집었다.
기사는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가 “여가부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는 발언으로 반페미 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무고한 남성을 성범죄로 고소할 경우 처벌을 강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윤 후보가 페미니스트인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지난달 캠프 고문으로 영입했다며 이는 젊은 여성 유권자들을 소외시켰다는 당의 걱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페이스북에 올리는 등 젊은 남성들에게 호소하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이 후보는 젠더갈등의 원인이 근본적으로는 점점 줄어드는 구직 기회로 보고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실제로 한국 남성들이 신남성연대 같은 극단적 반페미니스트 단체를 얼마나 지지하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다만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가 조커 복장을 하고 물총을 들고 여성 시위자들을 쫓아가며 올린 생중계 영상은 수십만 명이 시청했으며 지난 8월 한 온라인 토크쇼에서 배 대표가 3분 만에 약 900만원의 기부금을 모으기도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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