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대선 목전에서 돌연 ‘공백기’에 빠졌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4일 선대위 쇄신안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제외한 중앙선대위 및 원내지도부 전원이 사퇴했다. 대선을 64일 앞두고 제1야당이 선거 활동을 전면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다.
윤 후보는 이날 서울 서초구 자택에 머물며 핵심 참모들과 숙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당사가 아닌 광화문 개인 집무실로 출근했다. 김 위원장이 ‘총체적 쇄신’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가운데, 윤 후보의 최종 결단만 남으면서 당 전체가 그의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당 안팎에서는 “선대위 쇄신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오지만, 윤 후보가 쉽게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국민의힘이 내홍을 두 달 넘게 지속하는 동안, 다양한 차원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뿌리를 내렸다. 총체적 쇄신이라는 처방에는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곪은 병증이 숨어 있다. 윤 후보와 이준석 대표, 김 위원장 모두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먼저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의 ‘선거 전략 엇박자’다. 윤 후보는 정계에 입문한 직후부터 진영과 이념을 가리지 않고 포용하는 ‘국민통합’ 전략을 강조해왔다. 반면 이 대표는 2030세대를 집중 포섭하고, 506070세대 지지로 연결하는 ‘세대포위론’을 주장했다. 이 대표는 윤 후보가 이수정·신지예 등으로 대표되는 ‘페미니스트’ 인사를 영입하자 공개 반발했고, 결국 선대위를 떠났다.
두 사람이 상반된 전략을 쥐고 ‘벼랑 끝 갈등’을 거듭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불협화음과 적대감만 노출됐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한 정치평론가는 “일각에서 결국 이준석 대표의 세대결합론이 옳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윤석열 후보가 페미니스트 인사까지 영입하면서 2030 지지율 이탈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라며 “국민의힘과 선대위가 품은 진짜 문제는 선거전략이 완전히 상반된 것에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윤 후보 측과의 갈등 과정에서 선제적이고 공격적으로 충돌을 감행하는 깜짝수를 여러 차례 두면서 내홍을 폭발시켰다. 고심 끝에 둔 극약처방으로 보는 시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솔한 행동이라는 시각으로 바뀌면서, 윤 후보에게 비협조적이었던 이 대표의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윤 후보 역시 내홍 과정에서 ‘뒷짐’을 지는 모습으로 리더십 부족을 여러 차례 노출했다는 점에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윤 후보의 문제점은 이번 김 위원장의 ‘선대위 개편 선언’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3일 윤 후보와 상의를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선대위 전면 개편 방침을 발표했는데 “누군가 저질러서라도 발동을 걸어야 했다”고 했다.
외부로부터의 강제적 충격이 아니고서는 윤 후보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윤 후보의 위기 인식이 부족하다는 판단으로도 읽힌다.
반면 이러한 김 위원장의 돌발 행동 역시 대선의 최종 책임자인 윤 후보와의 협의를 건너 뛰는 비정상적인 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킹메이커’로 불리는 관록의 김 위원장이 정치 신인인 윤 후보와의 소통에 이 정도로 애를 먹는다는 것 자체도 좋은 징조는 아니다.
김용남 선대위 상임공보특보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종인 총괄의 쿠데타가 아니냐’는 질문에 “일응 맞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윤 후보를 향해 “연기만 해달라”고 공개 요청한 발언 역시 당의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식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연기만 해서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모르겠다”고 꼬집는 등 윤 후보와 김 위원장을 싸잡아 비판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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