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軍, CCTV 놓치고 철책 월북을 귀순 오판… 靑에도 잘못 보고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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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위기관리 총체적 부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탈북민 A 씨가 1일 월북(越北)할 당시 그를 북한에서 넘어온 귀순자로 착각한 22사단의 ‘오판’이 청와대까지 보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부대가 1차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그대로 최상부까지 보고되면서 정부가 A 씨 검거 등을 위한 위기 대응 ‘골든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부대의 안일한 근무태세, 월북자를 귀순자로 오판한 무능, 청와대까지 보고가 이어졌지만 오판을 걸러내지 못한 ‘필터링 실패’가 더해지면서 국가 위기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군은 이번 사태를 ‘경계작전 실패’로 결론 내리고 5일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 22사단의 ‘오판’… 합참도 대응 실패에 책임
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일선 부대는 A 씨를 1일 오후 9시 20분경 비무장지대(DMZ) 내 보존 감시초소(GP) 보급로 일대에서 열상감시장비(TOD)로 포착했다. 22사단은 그가 귀순자일 것 같다고 판단했고, 이러한 판단은 오후 9시 반이 지나 합참에 이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까지 보고됐다. 국가안보실에 소속된 위기관리센터는 국가 위기 상황을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다. 합참의 작전 지휘를 받던 부대는 당시 ‘귀순자’ 검거작전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군은 이미 3시간 전 철책을 뛰어넘던 A 씨를 놓친 데 이어 군사분계선(MDL)에서 불과 수백 m 떨어진 곳에서 A 씨를 포착했지만 특별한 의심 없이 귀순자로 판단해 그를 잡을 기회를 또 놓쳤다. ‘월북’ 대응이 필요한 순간, 정반대인 ‘귀순’ 상황을 가정해 오히려 대응에 차질까지 빚어졌다.

현장에 급파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조사 결과 사건 당일 철책을 감시하는 전방 폐쇄회로(CC)TV에는 A 씨가 철책에 접근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장면도 두세 차례 촬영됐다. 군은 이러한 사전 징후를 확인조차 못했고 A 씨는 2020년 11월 귀순 당시와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오후 6시 40분경 유유히 철책을 타고 넘어갔다. 정부 소식통은 “현장 조사 결과 감시요원들의 부주의와 경계 소홀 요소가 파악됐다”고 인정했다.

군은 지난해 2월 북한 남성이 동해상을 헤엄쳐 온 ‘오리발 귀순’ 사건 후 군의 감시 태세 수위를 확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당시 군은 이 남성을 CCTV로 10여 차례나 포착하고도 6시간 넘게 전방지역을 활보하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또 감시에 실패했다.

군은 A 씨의 월책(越柵) 당시 감지센서(광망) 경보가 작동함에 따라 신속조치반을 보냈지만 현장에 찍힌 발자국도 발견하지 못했다. 신속조치반은 철책 훼손이 없다는 이유로 ‘이상 없음’으로 보고하고 철수했다.

○ 특이 동향 없는 北… A 씨 신변 이상 없는 듯
우리 당국은 A 씨 신변과 관련해 북한 내부에서 아직 특이 동향은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4일 “보통 북한 국경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이러한 상황이 우리 측 감시망에 포착될 때가 많다”면서 “아직 그런 동향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A 씨의 신변에 이상이 없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은 새해 첫날 발생한 이번 월북 사건과 관련해 나흘째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2020년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탈북민이 다시 입북(入北)했을 당시 북한 매체는 “개성시에서 악성 비루스(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탈북)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이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사실상 국경 ‘봉쇄령’을 내린 상황 속에서 A 씨에 대한 북한의 대응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자 일각에선 “A 씨가 위장 귀순한 남파공작원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정부 당국은 4일 “A 씨의 대공 혐의점은 없다”며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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