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판도는 여전히 양강 구도다. ‘(범)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 (범)국민의힘 윤석열’ 구도가 다수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 대선이 ‘박근혜 대 문재인’ 대결이던 2012년 대선만큼 강력한 50 대 50 구도는 아니다. 현재 지지율만 봐도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200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에 가깝고,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도 2002년이나 2007년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쯤 된다. 한 표가 아쉬운 선거라 양강 후보도 이를 간과할 수 없다. 자연스레 다양한 대결 구도가 깔리게 된다.
“이재명 이길 자 누굽니까”
‘이재명 대 윤석열’보다 ‘윤석열 대 안철수’ 대결이 음으로, 양으로 더 치열하다. 표밭이 겹치는 수준이 가장 크다는 인식 때문이다. 양측은 모두 1차 전략으로 단일화에 선을 그었다. 안 후보는 국민의힘 거부층 지지까지 얻어 독자 영역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윤 후보가 단일화설을 경계하는 이유는 뭘까. “안철수가 더 마음에 들지만 소수파니 일단 윤석열에게 몰아주자”는 일부 지지층이 단일화가 유력해지면 안 후보를 국민의힘 후보처럼 여기고 밀어줄 수도 있어서다.
안 후보 독자 지지율이 윤 후보를 끝내 이기지 못하면 윤 후보는 이들 표심을 재흡수할 것이다. 문제는 안 후보가 윤 후보를 만약에 추월할 경우 윤 후보는 돌이킬 수 없는 하락세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윤 후보는 국민의힘 ‘신입 당원’이라 지지층 동향에 더 민감하다. 고로 지지층 누수를 막기 위해 단일화 언급은 일단 삼갈 수밖에 없다. 원래 단일화에 부정적이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더더욱 강경하게 단일화설을 제압하려 한다. 특히 윤 후보와 이 대표는 ‘2030 남성’을 윤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층이 겹치는 영역으로 인식하고 ‘여성가족부 해체’ 같은 공약을 전면에 걸었다.
안 후보는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정권교체 지지층을 최대한 자신에게 결집시킬 만한 논리를 찾았다. 그는 정권교체 지지층에게 “이재명을 이길 자 누굽니까”라고 묻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재명 대 윤석열’보다 ‘이재명 대 안철수’ 대결 시 이 후보가 더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이용해 “윤석열로 단일화해봤자 어려우니 우선 안철수를 밀어 올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안 후보의 독자 노선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게도 골칫거리다. ‘국민의힘을 찍을 수 없지만 민주당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 안 후보에게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응 전략은 2단계다. ‘안철수와 연대 또는 공동정부 구성’을 논했던 것이 1단계다. 안 후보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짐작했겠지만, 그런 제스처로 민주당의 포용력을 보여주면서 외연 확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안 후보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민주당은 기민하게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안 후보를 ‘윤석열 아바타’로 규정(민주당 강병원 의원)함으로써 이 후보와 안 후보 사이에 굵은 경계가 그어지기를 노린 것이다.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민주당은 심상정 후보의 약진을 가로막는 전략도 갖고 있다. 이 후보는 근래 ‘성장주의’로 비치는 5·5·5(5대 강국, 국내총생산 5만 달러, 코스피 5000) 공약을 내세워 중도 보수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럴수록 심 후보 측으로부터 “보수화되고 있다”고 비판받을 여지가 커진다. 따라서 정의당 등이 과거부터 주창해온 정책을 수용함으로써 ‘왼쪽의 반란’을 진압하려 한다. 고용보험을 넘어 ‘소득보험’을 전 국민에게 적용한다는 공약이 그 예다. 이에 심 후보는 최저소득보장제나 주4일 근무제 등을 공약하며 “변함없이 우리가 더 진보적”이라고 맞선다. “기획재정부 예산 기능을 청와대로 옮기겠다”는 이 후보 공약을 비판하면서 “국회가 예산 기능을 맡게 되는 우리가 더 민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수파 대결에 피해 보는 소수파
그런데 소수파 진압 전략으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따로 있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판을 크게 둘로 가르는 대전이다. 대표적 사례가 윤 후보의 선제타격 발언과 이에 대한 민주당의 ‘전쟁 위기’ 비판이다. 윤 후보가 언급한 “북한 미사일 발사에 선제타격”에는 ‘북한이 마하 5 이상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했을 경우’라는 가정이 붙어 있다. 이는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존 방침 중 ‘킬체인’을 가리킨다. 윤 후보는 ‘대응’이나 ‘보복’보다 더 과격해 보이는 선제타격 시나리오만 골라 꺼냄으로써 대북 강경 여론의 결집을 노렸다. 민주당은 윤 후보의 이런 의도를 폭로하기보다 윤 후보가 풍기는 위험한 뉘앙스에 집중해 “전쟁광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망언인가”라고 역공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효과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두 다수파의 대결이 격화되면 소수파가 피해를 입는 것은 확실하다. 다수파에 협공당하고 있다 호소한들 동정표를 줄 유권자는 별로 없다. 따라서 다수파의 정체를 폭로하는 프레임이 필요하다. 안철수 후보는 이 후보의 ‘탈모 치료제 국민건강보험 적용’과 윤 후보의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에 대해 각각 “카피약 활용으로 가격 인하가 더 적절하다” “부사관 월급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대응하면서 두 후보를 ‘쌍포퓰리즘’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안 후보까지 셋을 상대해야 하는 심상정 후보의 전략은 좀 더 복잡하다. 심 후보는 그린노믹스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재명은 MB(이명박)식, 윤석열은 퇴행, 안철수는 그린(녹색) 없는 디지털”이라며 셋을 ‘구(舊)질서’로 묶었다.
복잡미묘하게 돌아가는 선거판이다. 여기서 모든 후보가 똑같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지지율 올리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비호감 지수 낮추기다. 소수파 후보의 경우 호감도를 지지도로 연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호감도가 크면 후보를 자신 있게 홍보하지 못하는 ‘샤이 지지자’가 된다. 다수파 후보는 자신을 찍지 않을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감도를 올려야 한다. ‘내가 싫어서 상대 유력 후보에게 모여 있는 표’를 이완시키고 이를 소수파 후보에게 분산시키는 것이다. 내가 득표는 못 해도 상대방의 감표는 이룰 수 있다. 나아가 비호감 후보로 찍히면 당선 후에도 임기 초반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지고 국정운영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