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민정수석 임명에…판사들 “사법부가 정부부처냐” 탄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8일 14시 10분


대법원장 측근 판사의 민정수석 임명에 판사들 “사법부 독립 침해” 성토

“사법부가 정부 부처라고 생각할까 두렵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간사 출신 김영식 전 대통령법무비서관(56·사법연수원 30기·사진)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자 18일 법원 내부에서는 이 같은 탄식이 이어졌다. 한 판사는 “사법부 독립을 외치던 판사가 대통령법무비서관에 이어 민정수석에 임명되니 국민들이 법원이 독립해서 재판한다고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 金,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놓고 “대법원이 청와대 로펌 역할”
일선 판사들이 김 수석의 임명 소식에 사법부 독립을 걱정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판사들은 “판사가 퇴직 후 청와대나 국회로 진출한다면 판사 시절 내린 판결에 정치적 의도나 편향성이 있다는 의심을 사 국민의 사법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칫 판사 시절 활동이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한 ‘스펙’처럼 여겨지는 관례가 생기거나 청와대에 진출한 판사가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개입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판사 재직 당시 김 수석은 2015년 7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에 강성 개혁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을 만들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후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연루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자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추진하기 위한 법관회의 회의지원단장을 맡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김 수석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 당시 인천지법 대표로 참가한 김 수석은 “비실명 처리된 검찰 공소장을 보더라도 삼권분립을 지켜야 하는 최고법원이 얼마나 청와대의 로펌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김명수 대법원장, 청문회 당시 “판사의 청와대행 부적절”

김명수 대법원장도 2017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판사가 청와대로 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의 “대법원장이 속했던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 김형연 전 판사가 사표 내고 며칠 사이에 법무비서관으로 간 것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판사가 사직하고 정치권이나 청와대로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김 대법원장은 “이전에 문제가 됐던 고위직으로 가는 것은 더 그렇고요”라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이 ‘문제가 된 고위직’을 언급한 이유는 2015년 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판사 출신 대통령법무비서관을 시켜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개입하려고 시도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판사가 대통령법무비서관으로 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수석은 2019년 2월 법원을 떠난 뒤 석 달 만에 법무비서관에 임명됐다. 당시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김 수석의 청와대행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당시 박근혜 정부 대통령민정수석과 법원행정처 사이의 소통을 앞장서 비판하던 판사가 민정수석이 됐다”며 “대법원장 측근이라는 판사가 민정수석이 돼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의 강력한 ‘가교’가 생겼다. 당장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을 신뢰할 국민이 몇이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 “사법부 독립은 행정부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
판사들은 “사법부 독립은 행정부로부터의 개입을 막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수석이 간사를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014년 펴낸 번역서 ‘국제인권법과 사법’에도 사법부 독립과 행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펴낸 이 저서에는 “사법부 독립은 판사 개개인의 마음가짐 뿐만 아니라 사법부와 다른 기관들, 특히 행정부와의 관계나 상태 또한 포함한다”고 적혀 있다. OHCHR은 이어 “행정부나 입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판사가 직업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의 사법부 독립의 의미”라며 “독립된 사법부만이 법의 지배에 근거해 공평한 정의를 이루고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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