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직후로 돌아간 北 도발 시계…文 평화구상 좌초 위기

  • 뉴시스
  • 입력 2022년 1월 30일 16시 31분


북한의 전략적 도발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직후 수준으로 돌아간 양상이다. 핵·미사일 개발 재개를 공언해 온 북한이 새해 들어 하나 둘씩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한동안 신형 단거리 전술무기체계 개발에 주력했던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임계치로 여겼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턱밑 수준까지 전략적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 지난 5년 간 공들였던 한반도 평화 구상도 사실상 좌초된 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평가가 제기된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30일 오전 7시52분께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고각 발사 형태로 중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최대 고도 2000㎞를 솟아 사거리 800㎞ 가량 비행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이날 발사한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계열로 판단했다. 최대 정점 고도가 2000㎞의 고각 발사 형태를 띄었다는 점에서 2017년 괌 타격권을 목표로 이뤄졌던 화성-12형의 개량형 발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인철 합참의장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NSC 전체회의는 한반도 정세의 중요 분수령일 때만 직접 소집해 왔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엄중한 상황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NSC 전체회의를 소집한 것은 지난해 1월21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북정책 논의를 위해 소집한 이후 1년 만이다. 이번이 취임 후 11번째 NSC 전체회의 소집이다. 새해 들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을 그만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북한의 도발 양상이 핵·미사일 개발에 한창이던 2017년도와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문 대통령 상황 인식이 눈길을 끈다. 북한의 도발 양상이 2018년 ‘한반도 봄’ 국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감추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도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안정, 외교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대한 도전이자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앞서 북한은 2017년 7월4일 평안북도 방현 비행장 일대에서 괌 타격을 사정거리에 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계열의 화성-12형의 첫 시험 발사 이후 ▲7월29일 ▲9월15일 등 발사를 거듭했고, 마침내 2017년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의 성공 발사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발사 국면 때마다 NSC 전체회의를 소집했었다.

문 대통령이 이날 NSC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2017년 탄도미사일 발사 국면을 언급하며 대응책 마련을 지시한 것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 규정한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에 임박했다는 위기 인식의 반영 결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규정했던 북한의 레드라인을 공교롭게도 퇴임 100일을 막 넘긴 시점에 재환기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핵탄두 개발과 이를 실어나를 수 있는 운반 수단인 ICBM 탑재 2가지 조건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은 화성-15형 성공 발사를 계기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고,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시사하며 ‘한반도 봄’ 국면으로 전환됐다.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국면이 전개됐고, 북한은 비핵화 협상의 선제적 조치로 추가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북한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취한 조건 없는 대화 기조를 거부하며, ‘자력갱생’과 ‘강대강, 선대선’으로 맞섰다. 급기야 올해 1월 당 중앙위 8기 6차 정치국 회의에서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의 전면 재고 방침을 공개 시사했다.

이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 일환으로 취했던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 시험장 폐기를 되돌리겠다는 대미(對美) 메시지로 해석됐다. 동시에 남측을 향해서는 한반도 시계를 2018년 4월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이날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두고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 선언을 지켜왔는데, 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하는 근처까지 다가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러한 배경 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향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2월4일), 김정일 출생 80주년 기념일(2월16일), 김일성 출생 110주년 기념일(4월15일) 등을 계기로 도발 수위를 끌어올려도 이를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100일 미만의 남은 임기 동안 남북·북미 관계에서 새로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점을 감안해 안정적 상황 관리에 주력해왔던 문 대통령의 구상도 자칫 무산된 위기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앞서 문 대통령이 지난 20일 이집트 순방 도중 공개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상황을 봤을 때 평화구축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토로한 것도 이러한 무력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됐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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