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사실상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파기…美 변화 불가피

  • 뉴시스
  • 입력 2022년 1월 31일 09시 27분


북한이 31일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시험 발사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2018년 4월 발표한 핵실험·대륙 간 탄도미사일 유예, 즉 모라토리엄을 사실상 파기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조건 없는 북미 대화를 고수해온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국방과학원과 제2경제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기관의 계획에 따라 1월30일 지상 대 지상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검수 사격 시험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화성-12형의 사거리는 약 4500~5500㎞다. 이 사거리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사거리 3000~5500㎞) 중에서도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에 가장 근접한 수준이다. ICBM이 되려면 사거리가 5500㎞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은 사실상 ICBM에 준하는 미사일을 쏜 셈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사실상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18년 4월 발표된 모라토리엄이 지난 1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통해 재검토되기 시작했고 이번 화성-12형 발사를 계기로 사실상 파기됐다는 것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2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는 “주체107(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 간 탄도 로케트 시험 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 4년 만인 지난 19일 김 위원장이 주재한 정치국 회의는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했다”며 모라토리엄 파기를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사실상 모라토리엄 파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고 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중장거리 탄도탄 발사로 북한의 모라토리움 약속은 사실상 파기된 것으로 봐야 하고 추가적 핵실험과 ICBM 발사도 타이밍의 문제일 뿐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라고 짚었다.

임 교수는 “북한은 결국 앞으로 긴장 수위 조절은 할지라도 북경 동계올림픽, 한국의 대선 등 주변적인 변수는 개의치 않고 미국을 압박하고 양보를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추는 정치군사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압도적인 군사력 강화를 통해 미국의 굴복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히 미국의 관심을 끌어 유리한 대화 국면을 만들어보려는 과거의 패턴과 전혀 다른 북 미관계, 나아가 한반도 정세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전례 없는 강 대 강 대결의 전개를 예상케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그러면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의도와 능력을 정확히 읽고 실효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전례 없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ICBM을 재발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모라토리엄 선언에 따라 2017년 11월 화성-15형 이후 ICBM을 쏘지 않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화성-12형 발사는 ICBM 발사 가능성과 모라토리엄 파기 임박을 알리는 압박 성격”이라며 “2017년에도 화성-12형 발사 성공 이후 화성-14형, 화성-15형 발사로 빠르게 사거리 확장 실험을 했다. 북한의 ICBM은 화성-12형의 백두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됐다는 점에서 향후 ICBM 역시 검수 형식으로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ICBM 발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ICBM을 쏘는 데는 신중을 기할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ICBM 발사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ICBM 시험을 감행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선택지는 매우 제한된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결국 미 본토 안전 확보에 실패했다는 신랄한 비판이 공화당에서 제기될 것이고 미 유권자 다수도 여기에 동의할 것”이라며 “(북한이 ICBM을 실제로 발사하면)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반도 인근의 대규모 연합훈련,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미사일 발사 무력시위, 중국 제재를 포함한 세컨더리 보이콧 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북한도 이런 측면을 고려해 ICBM 발사는 신중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내 분위기가 본토 위협을 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전술핵을 사실상 인정받고 ICBM은 미국과 군비 제한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북미 간 대치 상황과 관련, 결국 미국의 태도가 관건이라고 봤다. 북한이 요구하는 핵보유국 인정을 미국 정부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북한은 미국과의 힘의 균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지속적인 미사일 개발을 통해 미사일 주권을 확보 받고 이중 기준을 철폐시키기 위한 수순”이라며 “궁극적으로는 핵미사일 군축협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연초부터 몰아치는 핵미사일 시험의 분명한 목적은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군축 또는 군비제한 회담을 시행하는 것”이라며 “제재 해제, 김정은 업적 과시, 미국 관심 끌기 등은 부차적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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