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 공약 줌인]
여야, 교육 현안 언급자체 피해
“표심 눈치 보며 침묵” 비판론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교육 분야에서 핵심 공약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각 당이 발표한 선거 공약은 물론이고 후보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내놓는 ‘한 줄 공약’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교육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 분야에는 국민 생활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서둘러 풀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대학 등록금을 2009년부터 14년째 동결하면서 황폐해진 고등교육 재정, 학령인구 급감에 대비한 대학 구조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현 정부가 2025년 일괄 폐지하기로 한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의 존립 여부, 고교학점제 도입을 반영한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도 모든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사다.
하지만 이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나 규모를 제시한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 관련 이슈는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갈려 자칫 표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캠프마다 언급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다. 교육계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말로는 국민을 위한 정책,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행동은 반대로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대학입시 관련 공약으로 모두 ‘수시 공정성 제고’와 ‘정시 확대’를 내걸었다. 그러나 수시와 정시 모집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에 대해서는 개략적인 수치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일부 캠프에서는 정시 확대가 여론을 끌기 좋은 만큼 확대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자는 이야기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캠프 관계자는 “(수시 축소를 반대할) 입학사정관과 공립학교 교사들, 지방대의 표가 떨어진다며 내부 반대가 심해 결국 넣지 않았다”고 전했다.
李-尹, 비율 제시 않고 “대입정시 확대”… 자사고 폐지엔 ‘침묵’
[대선 D―14]
정시확대-고교학점제 상충 논란 속 구체방안 없이 “미래지향” “새롭게”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도 공약 없어 자사고 폐지 언급 없는 李-尹과 달리 安 “전면 백지화”… 沈 “일반고 전환”
정시 확대는 2025년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와는 결이 맞지 않는다.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자유롭게 들으려면 그런 노력을 정성 평가하는 수시가 적합해서다. 이런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반영하는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은 향후 발표하겠다고만 했다.
새 정부 임기 중인 2024년에 대입제도 개편안이 발표돼야 하는 만큼 대선 후보들은 예정된 모순을 해결할 방안을 내놨어야 했다. 하지만 공약에서는 방향성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교육위원회 주도 2028학년도 미래지향적 대입제도 설계’(이재명 후보), ‘새로운 대입제도 마련’(윤석열 후보)이 전부다. 공약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이 후보는 수능에서 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없애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입시전문가는 “수능 변별력이 낮아져 정시 확대 공약과 앞뒤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마른 수건’ 대학 경쟁력 강화 공약 없어
고등교육 분야의 경우 공약이 거의 전무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고등교육 재정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GDP 대비 1.1%, 한국은 0.6%)으로 확보해야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나 고등교육세 신설 등을 각 후보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과 ‘현행 대학기본역량진단 폐지’를 공약했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14년째 동결된 등록금 문제는 표심 때문에 어떤 후보도 쉽게 언급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대학 재정이 이미 말라서 더 이상 짤 물도 없으니 고등교육 좀 살려달라’고 읍소했는데 실망스럽다”고 했다.
지방대학들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위기라며 지방대를 살릴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도 읍소했다. 하지만 역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후보는 없다. 이 후보는 △지역사회·산업체·대학이 동반 성장하는 새로운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 △서울 주요 사립대 수준으로 지역 거점 국립대 교육비 집중 투자, 윤 후보는 △새로운 평가방식 도입 및 재정지원 확대 △거점 대학 집중 투자를 공약했다.
당장 이달 대입 정시 추가모집에서도 대규모 미달 사태가 우려될 만큼 대책이 시급한 대학 구조조정 문제도 밑그림은 없다. 교육부는 지난해 학생 수 감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수도권 대학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했다. 2021년 기준 미충원(4만586명)의 75%가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왔지만 다 같이 고통을 분담하라는 취지다. 교육부가 재정 지원을 받으려면 정원 감축을 포함한 적정 규모화 계획을 5월까지 내라고 해 대학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 정부도 이런 식으로 ‘정원 땜질’을 반복한다면 학생 급감의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우려가 많다. 그러나 대선 후보 중 이 후보가 ‘회생 불가능한 대학은 안정적 퇴출 경로를 마련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이는 정부도, 국회도 수년째 방안을 내놓지 못한 바 있다. 사립대가 문을 닫게 하려면 설립자가 잔여재산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인데, ‘비리 사학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반대가 많아 추진하지 못한 것이다.
한 대학 총장은 “고등교육의 힘으로 한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는데 대학들이 힘들어도 알아서 하니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다”면서 “캠프에서는 ‘공약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가동 때 정책에 담기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자사고 문제 언급 않고 돌봄 공약은 재탕
대학은 물론이고 초중고교 분야에서도 민감한 부분들은 비어 있다.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걸고 추진한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의 일괄 일반고 전환 문제를 공약에서 다룬 후보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심 후보뿐이다. 안 후보는 ‘자사고 등 특목고 폐지 전면 백지화’, 심 후보는 ‘일반고 전환 예정대로 추진’이라고 밝혔다. 윤 후보는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교육정책 싱크탱크(공정교육혁신포럼)에 자사고공동체연합 대표가 들어갔음에도 관련 공약이 없다. 2025년 3월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게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재개정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자사고 등과 이들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은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되는 돌봄 문제에 대해서는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시행 중인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는 ‘오후 7시까지 돌봄 시간 연장’, 윤 후보는 ‘초등돌봄교실 오후 8시까지 운영’을 공약했다. 하지만 초등돌봄교실은 이미 지난해 교육부가 7시까지 연장하라고 권고했고, 학교에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학교돌봄터는 대부분 8시까지 운영 중이다.
다만 이 후보가 내건 ‘초등학생 오후 3시 동시 하교제’는 새롭다. 초등학교 저학년도 지역사회 전문가나 강사를 붙여 5∼7교시에 예술, 체육 등의 정규 수업을 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 측에서는 이 공약이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심이 높은 기초학력 저하 문제에 대해서는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진단을 실시해 ‘국가 책임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방식은 다르다. 윤 후보의 경우 “학업성취도와 학력격차를 파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전수 학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해 이전 정부에서 시행했던 전수조사 방식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부활을 시사했다. 이 후보는 “중3의 기본학습역량을 진단해 학습 필요 학생에게는 보충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일제고사 형태가 아니라 희망 학교나 학생에 한해 CBT(컴퓨터 기반 시험) 방식으로 해서 부족한 부분 문제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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