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취재’ 사진기자들이 셔터스피드 높이는 이유는?[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4일 16시 19분



카메라 조작 버튼에는 심도를 조절하는 조리개와 시간을 결정하는 셔터 버튼이 있다. 그 중 셔터는 전문가용 DSLR 기준으로 30초~8000분의1초까지 설정이 가능하다. 축구 경기 같은 빠른 장면은 400분의 1초, 겨울 올림픽의 봅슬레이 경기는 몇 천분의 1초로 찍어야 흔들리지 않은 사진이 나온다.

과거 선거와 달리 이번 대선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국회사진기자들은 앞에 말한 셔터 버튼을 빠르게 설정해야 하는 순간이 생겼다. 또한 스포츠 경기 취재처럼 촬영위치도 중요해졌다. 과거 선거는 연설 후 정면을 향해 만세를 하거나 화이팅을 하는 동작이 전부였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몸을 쓰는 세리머니가 생겼기 때문이다.

15일 윤석열 후보가 부산 유세에서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5일 윤석열 후보가 부산 유세에서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세리머니는 우발적으로 시작됐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15일 부산 유세현장에서 대규모 인파가 몰리니 흥이 나서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아래서 위로 ‘어퍼컷’을 날리는 동작을 하면서부터다. 이후 예상치 못한 호응에 윤 후보 유세현장에서 ‘어퍼컷’은 계속 이어졌고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온 지지자들이 가장 환호하는 순간이 되었다. 그냥 보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사진기자들은 새로운 고민이 이때부터 생겼다. 15일 유세 현장에서 위치를 잘 못 잡아 ‘물’을 먹은 기자들이나 그 후로 윤 후보의 유세현장 취재에 동행한 기자들은 연설이 끝날 때 쯤 ‘제발 내 카메라를 향해 ’어퍼컷‘을 날려주기를’ 속으로 바라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서다.

19일 이재명 후보가 전주 유세에서 발차기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9일 이재명 후보가 전주 유세에서 발차기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후보도 이에 질세라 19일 전북 전주 유세 현장에서 처음으로 발차기를 보여줬다.

코로나19를 종식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름 지어진 ‘부스터 슛’ 발차기를 보며 육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다리를 쭉 뻗는 유연성에 지지자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기세를 몰아 20일 수원 유세 현장에서는 아예 태권도복을 입고 실제 송판을 격파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20일 이재명 후보가 수원 만석공원에서 송판을 격파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일 이재명 후보가 수원 만석공원에서 송판을 격파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지자들은 열광 했지만 현장의 사진기자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이유는 ‘어퍼컷’ 보다 ‘발차기’가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에너지 소모가 많은 ‘발차기’는 일회성으로 끝나기에 찍는 위치와 발차기의 각도 등 결정적 순간이 사진의 우열을 가리기 때문이다. 최근 유세 현장에서 만난 한 사진기자는 “이번 대선은 스포츠 경기 찍으러 온 것처럼 임해야 한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23일 목포 유세 현장 윤석열 세러머니 연속동작.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3일 목포 유세 현장 윤석열 세러머니 연속동작.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며칠 전 기자가 직접 촬영한 목포의 ‘어퍼컷’은 친절하게도 여러 번에 걸쳐 이뤄졌다. ‘좌-우-정면’ 일보 전진 ‘좌-우-정면’ 뒤돌아 ‘좌-우-정면’ 식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취재 위치를 잘 못 잡아 못 찍을 일이 없었다. 윤 후보의 세리머니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오른손을 주먹 쥐고 아래에서 위를 향하다 왼손이 자연스레 머리위로 함께 올라가 만세로 끝난다.

22일 안철수 후보가 야구배트를 잡고 ‘스윙’ 장면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2일 안철수 후보가 야구배트를 잡고 ‘스윙’ 장면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양강 후보의 세리머니에 안철수 후보도 야구배트를 들고 ‘스윙’하는 동작의 퍼포먼스를 했다.

네티즌들은 “무도 세리머니 원조는 허경영” “공약과 정책을 몸으로 대신하나” 등의 비판의 댓글을 달기도 했다. 실제로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관련 세부계획이나 재원 조달 방법 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모두가 허경영이 되어가는 것인지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유세 현장을 취재하는 사진기자의 입장에서 일단 ‘물먹으면 안 되니’ 셔터 버튼을 빠르게 설정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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