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엔에서 미국 주도로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한 공동성명에 올해 처음으로 동참했다. 미국 등 동맹국들에 비해 대(對)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동맹 전선에서 소외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자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핵 위협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주요 동맹국 등 10개의 국가 및 기구와 긴급 통화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통화 상대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에 앞서 미국은 새로운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 국가를 정했지만 여기서도 한국은 제외됐다. 결국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의식해 눈치를 보며 동맹들과 발을 맞추지 못하는 등 늦장 대응으로 외교적 부담은 물론 경제적 손실까지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北 규탄 공동성명 첫 동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고 북한이 27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 후 미국과 한국 일본 등 11개국 유엔대사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불법적이고 불안정한 행동들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조현 유엔대표부 대사가 공동성명을 읽은 제프리 드로렌티스 미국 유엔대표부 특별 정무담당 선임고문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한국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에 동참한 건 올해 처음이다. 정부는 앞서 1월 10일과 20일, 2월 4일 미국 주도로 세 차례 발표된 공동성명에 모두 불참한 바 있다. 특히 이번 공동성명은 “모든 유엔국들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CVIA)하도록 의무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강하게 거부감을 보여 온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직접 명시하진 않았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개념을 적시한 것.
문재인 정부가 CVIA 표현까지 쓴 이번 공동성명에 동참한 건 최근 대러 제재 관련 미국 기류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러 제재에 소극적인 한국에 이미 불편한 감정을 내비친 상황에서 대북 문제에 있어서라도 발을 맞춰 미국을 달래보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봤다. 일각에선 대선 직전 우크라이나 사태, 북한 도발 재개 등으로 안보 문제가 민감해지자 이를 잠재우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국내용 제스처’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미국 정부에 추가적인 대러 제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월리 아데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과의 양자 면담을 갖고 “전략물자 수출금지를 시작으로 추가적인 제재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 늦장 제재 동참…동맹 전선 소외 조짐
정부가 뒤늦게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대북 문제에도 미국과 공조하고 나섰지만 동맹 전선에서 소외되는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80여 분간 동맹 및 파트너 국가 정상들과 다자 전화회의를 갖고 러시아의 핵 위협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지만 한국은 연결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폴란드 루마니아 등이 통화에 함께했다. 한국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 상무부가 새로 발표한 대러 수출통제 조치와 관련해 FDPR 면제도 얻어내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미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러 제재를 적용하고 있다고 판단한 32개 국가들에 한해 FDPR 적용을 면제해 줬는데 한국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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