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 정부가 대(對)러시아 제재를 구심점으로 ‘동맹국 규합’에 힘을 싣고 있다.
미 정부가 이를 발판 삼아 ‘포스트 우크라이나 사태’ 시대에 중국 견제 성격의 우방·동맹국 간 협력체에도 우리나라가 동참해 달라고 압박하는 수위를 높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국회의사당에서 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연두교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자유세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럽연합(EU)과 영국, 캐나다, 한국, 일본, 호주, 그리고 중립국 스위스 등을 언급하며 이들 국가가 러시아 은행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퇴출과 수출통제 같은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겠단 의지도 피력하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미국 국민과 맞서는 내기를 하는 건 결코 ‘좋은 생각’(good bet)이 아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1월 취임 이후 중국·러시아 견제를 위해 ‘동맹네트워크 확대’에 외교역량을 집중해 왔다. 특히 그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 그 견제를 위한 ‘협력체’ 공고화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8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등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악수’를 둬 ‘올해 중간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상황이다.
그러던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공교롭게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반등’의 계기가 된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이 최근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와 함께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3%가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 지지 의사를 표했다.
또 우리나라를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러 제재 동참은 그간 미국 주도의 동맹국 규합 동력이 부족하다는 일부 평가를 불식하는 계기가 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도 “미국 내에서도 조심스럽게나마 ‘결과적으로 푸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도운 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막무가내’식 행동을 보이니 미국을 중심으로 우방국들이 다시 뭉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사태 대응 와중에 중국 견제에도 나서고 있는 모습은 주목할 만 하다.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무부 당국자를 인용, “만약 중국 등 다른 나라가 제재 대상국과 연루된다면 그들 또한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보도하는 등 상황에 따라 대중 제재도 불사하겠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미국의 동맹국 규합과 사안별 기여도에 따른 ‘차등’ 대우가 더 노골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미국은 아직 우리나라를 대러 제재와 관련한 해외직접제품규제(FDPR) 적용 예외 대상 국가에 포함하지 않았다.
FDPR은 미국의 원천기술 등이 생산에 활용된 특정 품목을 수출할 땐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조치 예외 대상에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 다른 나라들과 달리 대러 제재 조치 발표가 늦었기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정 정도 마무리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규합 행보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영국, 호주와 결성한 안보동맹 ‘오커스’(AUKUS) 확대 구상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국 입장에서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 국가들을 다시 한 번 결집하는 계기가 됐으나, 중국의 위협은 아직 러시아처럼 노골적이지 않다”며 “미국 입장에선 아시아 협력체를 확대에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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