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對日정책, 국제 정세의 맥락 속에서 조망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4일 03시 00분


[윤석열 시대 / 새 대통령에 바란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韓-日 과거사 놓고 대립중이지만 ‘북핵’처럼 韓美日 공조 필요할때도
대일정책, 한국과 세계에 초점을… 여론 귀 기울이고 때론 설득도 해야

2019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이 일본 사회에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감독은 미키 데자키라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영화 제목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논쟁에서 주된 전쟁터가 미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좇으며 감독은 위안부의 진실을 추적한다. 나는 이 제목을 단 감독의 의도가 한국에서도 주목받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언론은 “거짓 선동의 일본”이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주제에만 초점을 맞췄다.

위안부 논쟁은 피해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과 유럽, 호주와 유엔이 그들 편에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간의 모든 분쟁이 한국 혹은 피해자의 승리로 끝난 것은 아니다.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는 그 유산 어디에도 제대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지난달에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이 논란이 됐다. 그곳도 강제징용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이 논란에서도 전쟁터는 한국과 일본이 아니라 유네스코와 유엔, 그리고 국제사회의 여론장이다.

2019년 강제 징용공에 대한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이 수출 규제를 발표하자 한국 정부는 그 대응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나 불과 석 달 뒤 종료 통보 효력을 정지시켜 지소미아는 자동으로 연장되었다.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지만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다.

한일관계는 분쟁이든 협력이든 모두 국제 정세의 맥락 속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때로는 일본과 대립해야 하지만, 북핵 문제처럼 한미일 공조가 필요한 사안도 있다. 게다가 미중 마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면서 미국과 유럽은 한국과 일본이 그들 편에 서길 바라고 요구한다. 일본은 발 빠르게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의 우방임을 천명했다. 그래서 한일관계가 더 복잡해졌다. 이 복잡한 정세 속에서 새 정부는 위안부, 징용공, 군함도, 사도광산, 수출규제 등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그런데 복잡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한국 내 여론이다. 일본에 관한 일이라면 늘 감정이 먼저 앞서고 그 에너지의 폭발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겁을 낸다. 위안부 합의는 파기한 것인지, 인정한 것인지 아직도 모호하다. 징용공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피고인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은 언제 압류되는 것인지, 압류될 수는 있는 것인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일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어느 것은 거부하고 어느 것은 협조해야 하는지, 징용공에 대한 보상은 어떤 방식이 좋을지에 대해 마땅히 의논하고 최선의 길을 모색해야 하건만, 아무도 섣불리 나서려 하지 않는다. 반일감정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에서, 그 에너지에 참화를 입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일정책은 오랫동안 일본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일본의 망언과 역사왜곡에 격렬히 분노하고, 일본의 경기 악화를 비웃고, 도쿄 올림픽의 실패를 조롱하는 데서 멈춘다. 자, 그러면 이 일본을 상대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주제는 토론장에 올라오지 않는다.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결여다. 위안부 문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고 믿지만, 고노 담화도 위안부 합의문도 읽어본 사람이 드물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신의 연구 성과와 논쟁을 제대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계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주전장의 감독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적다는 점에도 매우 놀랐다”고 토로한 바가 있다.

일본과 이대로 대립할지 아니면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지, 징용공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한국이 할지 아니면 일본에 요구할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결정할 문제다. 그리고 한국을 위해 가장 현명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국제 정세와 과거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일본에 관한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민주적이고 투명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 정부의 대일정책은 우선 한국과 세계에 초점을 맞추라고 부탁하고 싶다. 일본과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전제로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열고, 거기에서 들리는 다양한 여론에 충실히 귀를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때로는 여론을 설득도 하면서, 그렇게 정책을 수립해 가기 바란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약력
△대구(56) △대구 영진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한국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 △일본 국제대 조교수 △미국 미시간대 방문교수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윤석열#대통령#정책#일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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