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의제에 얽매이지 말고 일단 만나자고 직접 밝혔다.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을 두고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신구 권력 간 갈등 양상으로까지 비춰지자 “회동부터 하자”는 취지로 먼저 손을 내민 것.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청와대 만남과 관련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며 화답했다. 하지만 양측 간 인사·사면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져 회동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신구 권력 갈등 장기화에 부담 커진 文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회의에서 “윤 당선인과 빠른 시일 내에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이어 “(회동을 위해)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직접 조건 없이 만나자는 메시지를 낸 건 실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물꼬를 트기 위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16일 회동 불발 이후 물밑에서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당선인과 갈등 국면이 이어질 경우 본인이 거듭 강조한 원활한 업무 인수인계가 일찌감치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또 문 대통령 입장에선 벌써부터 당선인과 통합 대신 갈등으로 보여지는 자체가 퇴임을 앞두고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앞서 14일 대선 이후 첫 공개석상 발언에서 ‘통합’이란 단어만 6차례 쓰는 등 윤 당선인에게 ‘국민 통합’에 나서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당선인에게 ‘허심탄회하게 만나자’는 동시에 ‘빨리 만나자’고 사실상 압박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탁현민 대통령의전비서관 등 참모들에게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개별적인 의사 표현은 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것도 윤 당선인 측을 자극해 대립 구도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탁 비서관은 전날(17일) 페이스북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는 윤 당선인을 향해 “여기(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을 향해선 “의전비서관에 신경 끄시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 달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탁 비서관은 이 같은 내용을 페이스북에서 삭제했다.
● 한국은행 총재·감사위원 등 인사권 이견 여전
김 당선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입장 발표 후 약 3시간 만에 “국민 보시기에 바람직한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의 공개 제안을 계기로 양측 간 물밑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 결과 특히 한국은행 총재, 감사위원, 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 정부 주요직 및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한 의견차는 이날까지 여전했다. 극적으로 그 간극이 좁혀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회동이 지체될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듯 청와대와 당선인 측은 계속 신경전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KBS라디오에서 “전임 정부가 ‘알박기’ 인사를 하는 건 국민의 민심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31일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인사 논란을 언급하며 “지금 임기 4년짜리 한은 총재 인사를 전임 정부가 임의로 해버린다면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남은 임기 동안 인사권은 문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도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알박기 인사 현황’ 전수조사를 벌이는 등 현 정부를 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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