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총재 후보자 지명 놓고 또 충돌
尹측, 靑발표에 “협의 안했다” 반발… 靑 “장제원에 이창용 미리 물어봐”
공석인 감사위원 2명 인선도 평행선
靑 “당선인 조건 걸고 만난적 없어”… 尹측 “이런 상황서 회동 자체 무의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의견을 듣고 후임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를 발표했다.”(청와대 고위관계자)
“(이철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이창용 씨 어떠냐’고 해서 ‘좋은 분’이라고 한 게 끝이다. 협의한 것도 추천한 것도 없다.”(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를 지명한 23일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인선을 놓고 또다시 격하게 충돌했다. 양측 간 첩첩이 쌓인 문제 가운데 가장 접점이 있는 의제로 알려진 한은 총재 지명을 놓고도 진실공방을 벌인 것이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 간 깊은 감정의 골을 드러낸 것으로, 법적으로 정권이 이양되는 5월 10일까지 신구 권력 간 갈등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한은 총재 인선 두고 靑-尹 진실공방
문 대통령이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한 이날 오전 일각에선 청와대의 ‘화해 제스처’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윤 당선인 측에서도 그간 긍정적인 기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날 인선을 공개하며 “윤 당선인 측 의견을 들었다”고 밝힌 것도 이런 기대를 더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장 비서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인선 발표 10분 전에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 발표하겠다고 하기에 (어이없어) 웃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윤 당선인이 보고를 받고) ‘장 비서실장이 제 결재도 안 받고 추천했겠느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인선을 강행했다는 뜻이다.
그러자 청와대가 윤 당선인 측과의 협상 과정을 세세하게 공개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한은 총재 후보 이름이 언론에 많이 나오기에 이창용 후보와 다른 한 명에 대해 (장 비서실장에게) 물어봤다”며 “(장 비서실장이) 이 후보라고 해서 청와대에서도 이 후보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쪽 인사를 원하는 대로 해주면 선물이 될 것 같았는데 당황스럽다”라고 했다. “(윤 당선인 측이) 자꾸 거짓말하면 다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당선인 측에) 정식으로 추천해 달라고 해서 분명한 의사 전달을 하면 발표하는 게 존중”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와 함께 일할 인사에 대해선 당선인의 추천을 받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후보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결국 인사 주도권을 둘러싼 기 싸움인 셈이다.
○ 尹 측 “靑의 감사위원 임명 위한 명분 쌓기”
감사원 감사위원 인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양측의 의견차는 더욱 극명하다. 청와대는 5월 9일까지 인사권 등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는 입장이나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집을 사서 중도금까지 내고 등기 절차만 남았는데 ‘내게 등기소유권 있으니까 내 집 고치겠다’고 하는 게 합법적이냐”라고 말했다.
특히 공석인 감사위원 두 자리를 놓고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기세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에 한 자리씩 추천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당선인 측에서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가 신임 감사위원 2명 중 1명을 임명할 경우 감사원장 포함 7명인 감사위원의 과반을 친여 성향 인물로 채우는 것”이라며 ‘알 박기’라고 반발했다. 윤 당선인 측은 이날 새 한은 총재 후보자로 무난한 전문가를 지명한 배경을 놓고 “(청와대가) 궁극적으로 감사위원을 임명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을 놓고도 청와대는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이 이렇게 조건을 걸고 만난 적이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반면 윤 당선인 측에선 “이런 상태에서 회동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우리 할 일을 하겠다”라는 기류가 강하다.
윤 당선인은 지난 주말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를 답사한 직후 관저로 사용할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까지 차량으로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 측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했다. 신구 권력 간 불신과 감정의 골로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이 역대 처음으로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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