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심을 인사의 보이지 않는 척도로 삼지 않았으면…” [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못 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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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4월 9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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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前 대통령실장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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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인터뷰했습니다. 모든 정보가 모이는 청와대에서 왜 조각과정에 늘 인사검증 실패가 벌어지는 지 이해할 수없었기 때문이지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인사청문회 낙마 사례가 없는 정권이 없고, 직전 박근혜 정부에서는 무려 3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 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했습니다.

청와대 인사검증팀은 검찰 경찰 행정안전부 국세청 등 각 부처에서 납세 전과 위장전입 논문표절 경력 등 후보자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받습니다. 경찰은 거주지 주민 평가를, 국가정보원은 주변 인물들과 근무처 평판 등도 종합해 올린다고 하는 군요. 여기에 대통령실장(지금은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의 예비청문회도 거칩니다. 그런데도 국무위원 후보자가 내정되면 온갖 의혹과 문제들이 제기되고, 이 중 상당수는 결국 낙마에 이릅니다. 청와대의 검증 능력이 떨어져서일까요? 그럴 리야 없겠지요. 결국 문제는 능력 있는 사람을 쓰는 게 아니라, 시키고 싶은 사람에게 자리를 주려다보니 생기는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 인사검증은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요.



이명박 정부 시절 모 인사가 국방부 장관 후보로 올라왔는데 최종 단계에서 전역 후 방위산업체 고문을 맡은 것이 문제가 돼 제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 인사를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고, 결국 같은 문제로 낙마했지요. 임 전 실장은 검증 과정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인물에 대한 판단을 쓸 때 펜을 잡은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능력은 있지만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시키고 싶다면 ‘소신 있게 일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대인관계가 다소 미흡함. 하지만 업무 능력은 탁월함’이렇게 쓴다는 것이죠. 만약 반대라면 ‘업무 능력에 비해 대인 관계에서 많은 적이 있음’ 이런 식으로 쓰고요. 미흡, 탁월, 적이 많음 이런 용어들이 워낙 주관적인 용어라 증명할 방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리를 얻고 싶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 평가서를 좋게 쓰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직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섭게 달려든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임 전 실장은 대통령이 큰 결심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표현이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일해야 하는 사람과 챙겨 줘야할 사람을 구별해야한다는 것이죠. 선거 때 받은 도움 때문에 일 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일하는 자리’를 주면 나라가 불행해진다는 것이죠. 챙겨 줘야할 사람들은 외부에 적당한 자리가 많으니 그런 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임 전 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인사를 정국 운영 카드로 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죠. 대체로 역대 정부가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개각 등 인사 카드를 쓰는데 의도와 달리 부담만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이것이 정말 중요한데… 충성심을 인사의 보이지 않는 척도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정치권 인사들과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그들이 사람을 쓰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충성심인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국회의원은 보좌관 추천을 부탁하면서 자신은 충성심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하더군요. 충성심은 어떻게 해야 임명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걸까요. 혈서라도 써야하나요?

임 전 실장과의 대화는 5년 전일입니다. 그런데도 전혀 기시감이 들지 않는 군요. 그동안 나라를 이끈다는 집권여당 의원들이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 ‘한번도 만나본적 없던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맞이하게 됐다’며 용비어천가를 서슴지 않았던 탓이겠지요. 윤석열 정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당선인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당선인이 새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해준다면 분명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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