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 문학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이끈 최영미 시인이 과거 성 비위 전력과 함께 성추행 미화 논란에 휩싸인 윤재순 대통령 비서실 총무비서관에 대해 “잠재적인 성범죄자의 특징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 시인은 16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나와 “잠재적인 성범죄자의 특징이 보이는 분을 굳이 우리가 나라를 대표하는 비서실의 비서관으로 앉혀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이분을 지금 감옥에 보낼까 말까를 결정하는 게 아니지 않나”라면서 “이분이 공직을 수행하는 데 적합한가를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데 법 이전에 도덕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시인은 윤 비서관이 과거 쓴 시에 대해 “확실히 제 취향은 아니다. 주관적인 기준에서는 시라기보다는 산문에 가까운 글”이라며 “시적인 긴장도가 거의 없고 글이 늘어졌다. 언어의 밀도가 아주 낮고, 창의적 표현도 거의 없고, 재치나 은유나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조금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제의 시구절을 두고 “이분이 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분이구나 (싶었다)”라며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분들 가운데 성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은 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보기에는 교육의 문제다. 소년기에 고착된 성에 대한 욕망, 그것에 대한 인지가 글로 보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윤 비서관의 시가 성추행 가해자의 무례함을 풍자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구차한 변명”이라며 “풍자라면 위트나 유머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풍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보는 분들의 기본적 문학적 소양에 대해서 의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미투 운동 이전의 시이기 때문에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말한 데 대해서도 “굉장히 잘못된 인식”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1994년에 이미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돼 시행됐다. 이미 그때부터 성추행은 범죄였다”고 지적했다.
최 시인은 “시인도 예술가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고,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표현의 자유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비서관은 검찰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2002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출간한 시집에 논란의 시 ‘전동차에서’를 발표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전동차에서만은 /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 / 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 “풍만한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 보고 / 엉덩이를 살짝 만져 보기도 하고 / 그래도 말을 하지 못하는 계집아이는 / 슬며시 몸을 비틀고 얼굴을 붉히고만 있어요” 등의 구절이다.
논란이 일자 진보 성향 문학계 인사인 류근 시인은 “수십 년 시를 읽은 사람으로서 그냥 침묵할 수 없어 굳이 한 마디 남긴다”라며 “실패한 고발시, 실패한 풍자시, 실패한 비판시일 수는 있어도 ‘성추행 옹호시’라고 보여지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그는 “흐름과 맥락을 보면 오히려 지하철 안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무례와 남성들의 성추행 장면을 드러내서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인들과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뭔가 비판하고 고발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라며 “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얼마든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문학 ‘작품’을 꺼내 들고 한 부분만을 들추어서 조리돌림하는 것은 구차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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