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년간 지역 살림을 책임질 4132명을 뽑는 6·1지방선거가 19일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으로 13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서울시장 등 17명의 광역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을 비롯해 시장, 군수, 구청장 등 226명의 기초단체장을 뽑는 선거에 가려져 있지만 이번 선거에선 시·도·군·구의원 등 광역·기초의원 3860명도 선발한다.
특히 주민들의 실생활에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는 건 시장, 도지사, 군수, 구청장이 아닌 3860명의 지방의원이다. 서울시만 해도 44조 원에 이르는 예산을 얼마든지 뜯어고칠 수 있는 권한은 서울시의원 110명에게 있다.
또 시장, 도지사가 내건 공약이라도 지방의원들이 조례로 무력화시켜 버릴 수 있다. 경기 지역의 한 국회의원은 “연간 최대 100만 원까지 지급하는 경기도 기본소득 정책은 더불어민주당이 경기도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시행된 것”이라며 “부동산 관련 세금만 해도 지방의회에서 조례를 만들어 얼마든지 늘리고 줄여서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서울 서초구가 정부 정책에 맞서 1주택자의 재산세율을 50%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서초구의회에서 구의원들이 재산세 감면 조례를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지방의원들은 정작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제대로 된 견제도 받지 않는 ‘지방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2010, 2014, 2018년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시·도의원 선거 결과를 전수 분석한 결과 특정 정당의 쏠림 현상은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민주당이 2010년부터 각각 74.5%, 72.6%, 92.7%에 이르는 의석을 차지했다. 여야 텃밭 역시 특정 정당의 독식이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지역 광역의원 120석 중 보수 정당은 단 1석도 얻지 못했고, 대구·경북 광역의원 90석 중에서 보수 정당이 73.3%(66석)를 차지했다. 국회 관계자는 “지방의원을 제대로 뽑아야 시장, 도지사, 군수들이 실질적으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권자가 의외로 적다”고 말했다.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 역시 무관심 속에 치러지긴 마찬가지다. 동아일보가 14, 15일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서울시교육감 선거 여론조사 결과 10명 중 6명(66.7%)이 ‘지지 후보가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지지 유보층으로 조사돼 ‘깜깜이 투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산세 감면 등 결정권 쥔 기초의원 선거, 무관심속 ‘묻지마 투표’
이제는 전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무상급식, 서울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버스 전용차로, 지방 곳곳에 뿌리내린 ‘100원 택시’까지…. 유권자들의 생활과 밀착된 이 정책들은 과연 누구의 손에서 결정될까.
흔히 국회의원이나 광역시장, 도지사의 결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정책의 결정권은 지방의회가 쥐고 있다. 정책 실시의 근거가 되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는 지방의회의 의결로 제정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 시정(市政)은 광역의원인 서울시의원들이, 종로구의 구정(區政)은 기초의원인 종로구의원이 핵심인 셈이다. 6·1지방선거에서 선출하는 4132명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 역시 3860명(93.4%)에 이르는 광역·기초의원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동네 지방의원이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권자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도지사와 같은 자치단체장에 밀려 지방의원들에 대한 관심은 적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 때마다 ‘묻지 마 줄투표’가 이뤄지고, 지방의원들은 감시와 견제에서 비켜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 ‘우리 동네’ 살림 좌우하는 지방의회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 여파가 거셌던 2020년 9월, 서울시는 물론 여야 정치권의 관심이 서초구의회에 집중됐다. 25개 자치구 중 유일한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이었던 조은희 당시 서초구청장은 9억 원 이하의 1가구 1주택에 대한 재산세의 50%를 깎겠다고 나섰고, 서초구의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지방의회의 조례 입법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광역·기초의원들이 일하는 지방의회의 핵심권한은 조례 제정 권한이다. 중앙정부가 국회가 만든 법에 따라 일한다면, 지방정부는 지방의회가 만든 조례를 토대로 일한다. 이런 조례안을 심의·의결하는 것이 바로 지방의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할과 의무다. 이들은 과거 ‘무보수 명예직’이었지만, 현재는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의정활동비와 입법활동 지원인력을 지원받는다. 전국 기초의원들은 지난해 기준으로 월정수당과 의정활동비를 합해 평균 4062만 원을 지급받았다.
국회 관계자는 “지방의원은 해당 지역을 총괄하는 ‘작은 국회의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만약 시의회가 작정하고 반대하면 시장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은 1년여의 임기 내내 시의회 110석 중 102석을 차지한 민주당 시의원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 적극적인 감시로 ‘무관심 줄투표’ 막아야
문제는 지방의원에 대한 낮은 관심으로 공천부터 당선, 의정활동에 이르기까지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시장, 구청장에 누가 출마했는지는 관심사지만 시의원, 구의원은 유권자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여야를 불문하고 현역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측근에게 보은하는 공천도 허다하다”라고 했다. 자연히 경쟁률도 낮다. 이번 지방선거의 선거별 경쟁률은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순으로 낮았다. 특히 여야의 안방인 영남과 호남에서는 지방의원 후보자 중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이런 느슨함은 자연히 지방의회의 직무유기를 부른다. 빅데이터 분석기업 빅힐애널리틱스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함께 분석한 결과 2018년 선출된 광역의원들은 1년 평균 2.99건, 기초의원은 2.05건의 조례안을 발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여야의 텃밭에서는 더 낮아졌다. 기초의원 조례안 평균 발의건수가 가장 낮은 3곳은 전북, 경남, 경북으로 나타났다. 경북 지역 기초의원 절반 이상(53%)은 연평균 발의건수가 1건도 되지 않았다. 특히 경북 영천시의원은 1인당 연평균 발의건수가 0.99건으로 가장 낮았다.
이 때문에 선거철마다 아예 ‘기초의원 폐지론’도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 했다. 경북대 엄기홍 교수는 “학계, 시민단체, 언론 등이 의정 활동을 감시해서 유권자에게 알리면 정당도 이를 의식하면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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