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20화입니다.》
“증인, 거짓말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다는 거 고지 받았죠?”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34차 공판에서 정영학 회계사 측 변호인은 증인으로 출석한 부동산 개발업체 대표 이모 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씨는 2013년경부터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와 5호 소유주 정 회계사 등 대장동 사업 민간사업자 측에서 실무자로 일한 인물입니다. 2019년 천화동인 4호 이사로 등기되기도 한 이 씨는 업자들 사이에서 ‘남욱 집사’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정 회계사는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이 씨와 정민용 변호사에 대해 “남 변호사의 오른팔, 왼팔로 매우 막역한 사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남 변호사의 대학 후배인 정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이 씨는 남 변호사 측 인물이라는 겁니다. 이는 앞선 재판에서 재생된 ‘정영학 녹취록’ 내용에도 부합합니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는 2020년 10월 경기 성남의 한 노래방에서 “남욱이는 부담하는 사람이 우리가 아는 민용이(정 변호사)하고 ○○(이 씨)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씨는 지난달 27, 30일 이틀 간 법정에 출석해 “정 회계사의 지시를 받고 대장동 사업과 관련한 실무를 수행했고 남 변호사와 가까워진 건 2018년 8월 이후”라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남 변호사 측도 30일 “이 씨는 남 변호사의 오른팔이 아니고, 정 회계사 밑에 있던 실무자”라는 취지로 이 씨에 대한 반대신문을 진행했습니다. 이에 정 회계사 측은 위증죄를 거론하며 이 씨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정민용과 비밀리에 공중전화로 통화… 남욱 말고 정영학이 시켜서”
검찰은 2014년 11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등 ‘대장동 5인방’이 남 변호사가 추천한 정 변호사, 정 회계사가 추천한 김민걸 회계사를 각각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입사시켰다고 봅니다.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남 변호사는 “무간도 영화를 찍는 것처럼 공사 안에 우리 사람을 넣어놨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2015년 초 정 변호사는 민간에 이익을 몰아주기 위한 이른바 ‘7대 독소조항’을 정 회계사에게 전달받아 대장동 사업 공모지침서에 반영시켰습니다.
검찰은 정 회계사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 등을 토대로 이 씨가 공사 내부의 정 변호사와 외부의 남 변호사, 정 회계사 사이에서 연락책 역할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 회계사는 검찰에서 이 씨가 정 변호사에게 7대 독소조항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27일 법정에서 이 씨는 2014년 말경부터 이듬해 2월 공모지침서가 공고될 때까지 공사 전략사업실 소속 정 변호사와 서너차례 이상 만남을 갖고 10회 이상 통화하며 대장동 사업 공모 준비 진행 상황 등을 확인한 것은 맞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씨에 따르면 이런 연락과 만남은 정 회계사의 지시로 이뤄졌고, 정 회계사가 시키는 대로 통화는 공중전화를 이용해 비밀리에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씨는 정 회계사 진술처럼 7대 독소조항 등을 전달하는 연락책 역할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7대 독소조항 내용에 대해서 “정 회계사에게 들어서 공고 전에 미리 알았지만 정 변호사에게 들은 적은 없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검찰은 이 씨에게 “이 씨가 당시 정 변호사의 이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아서 수시로 접속해 공모지침서 초안 진행상황을 확인했다”는 정 회계사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이 사실인지를 추궁했습니다. 검찰이 확보한 이 씨의 2020년 11월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실제로 정 변호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있다는 증거도 제시했습니다. 이 씨는 “정 변호사가 (공사를 퇴사하고) 회사를 설립했을 당시여서 그 때(2020년 11월) 받은 것”이라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날 이 씨는 2015년 2월 공모지침서가 공고되기도 전 본인이 작성한 사업계획서에 ‘확정이익 방안’이 먼저 포함된 경위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씨는 내내 자신의 모든 업무는 ‘정 회계사의 지시’를 받고 한 것이었단 점을 분명하게 강조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2014년부터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 특수부의 수사를 받고 있던 터라 사업에 관여할 상황이 못 됐다는 겁니다.
30일 진행된 피고인 측 반대신문에서 이 씨는 남 변호사 측의 이 같은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씨는 정 회계사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들에 대해 거의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답하며 남 변호사 측에 유리한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이 씨는 2020년 9~12월 남 변호사가 공사를 퇴사한 정 변호사에게 법인 계좌 등으로 지급한 35억 원에 대해서도 “투자금 성격”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이 돈을 남 변호사가 정 변호사에게 준 뇌물로 보고 있습니다.
뒤이어 반대신문을 진행한 정 회계사 측은 정 회계사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을 모두 부정한 이 씨가 ‘남욱 사람’이라는 걸 입증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씨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하고 나선 겁니다. 대장동 사업 공모 준비 진행 상황을 이 씨가 정 회계사에게 비밀리에 보고 했다는 등 이 씨의 주장이 정 회계사의 책임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이를 부정하고 나선 겁니다.
정 회계사 측은 지난해 9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후 이 씨가 남 변호사, 정 변호사와는 여러 차례 통화했으면서도 정 회계사와는 한 차례도 통화한 적이 없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위증죄 처벌도 거론했습니다. 그러나 이 씨는 “사실대로 증언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이날 정 회계사 측과 남 변호사를 비롯한 나머지 ‘대장동 4인방’ 양측 간 공방이 본격화되면서 절차를 둘러싼 신경전도 벌어졌습니다. 김만배 씨 측 변호인은 정 회계사 측이 반대신문 과정에서 새롭게 제시한 증거를 미리 확인하지 못했다고 항의했습니다. 김 씨 측은 “저희들은 사실상 (정 회계사를) 상대방이라고 생각하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전 열람 기회를 주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정 회계사 측은 “당연히 상대방을 검찰로 하고 있어서 검찰과 재판부에 제출할 자료만 들고 왔었다. (다른 피고인 측은) 열람등사를 통해 입수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 간 입장이 다르고 사실관계 주장이 다른 부분이 있다”며 “향후에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 질문하는 경우가 있으면 미리 다른 피고인 변호인들에게도 알 수 있게 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10일 ‘대장동 사업 담당’ 성남시 공무원 증인신문 속행
이틀째 법정에 출석한 이 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이날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의 일정 등을 배려해 20일 이 씨에 대한 남은 증인신문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3일 열린 35차 공판에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성남의 뜰 컨소시엄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 안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2016년 2월 대장동 사업과 제1공단 개발사업이 분리됐던 당시 상황 등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성남시에서 대장동 사업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성남시 공무원 함모 씨도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함 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다음 재판이 열리는 10일 이어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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