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지방선거를 연달아 이긴 국민의힘에서 당 대표와 당내 최다선(選) 의원의 갈등이 극한까지 치닫고 있다. 5선의 정진석 의원이 우크라이나 방문에 나선 이준석 대표를 향한 공세의 포문을 열자 이 대표는 9일 귀국해서까지 정 의원을 거세게 비판했다. 당 지도부가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지만 당내에서는 “집권 여당이 되자마자 차기 권력을 둘러싼 난타전이 시작됐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서 정 의원을 겨냥해 “당 대표를 몰아내자고 대선 때 방에서 기자들 들으라고 소리친 분을 꾹 참고 우대해서 공천관리위원장까지 맡기고 공관위원 전원 구성권까지 드렸으면 당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예우는 다 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1월 선거대책위원회 개편을 놓고 내홍을 겪었을 때 정 의원이 중진 의원 모임에서 이 대표를 향해 “비상식적”이라고 성토했던 것을 지적한 것. 그는 이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기자회견에서도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최재형 의원을 ‘이준석계’로 몰아붙이면서 정치적 공격을 가하는 것은 적어도 여당 소속 국회부의장이 해서는 안 될 추태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둘의 갈등이 ‘당권 싸움’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선 “정 부의장은 당권 주자가 아니다”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도 정 의원을 향한 공세에 가세했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정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청양과 부여 군수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용태 최고위원도 최고위원 회의에서 “명분이 부족한 충고는 더 이상 충고가 아닌 당 지도부 흔들기로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당의 주축 인사들이 ‘육모방망이’(이 대표), ‘싸가지’(정 의원) 등의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충돌하자 국민의힘 의원과 당직자들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중진 의원은 “친윤(친윤석열) 그룹의 맏형 격인 정 의원이 갈등의 전면에 나서면서 선거 압승의 훈풍이 빠르게 증발해 버릴 위기”라고 우려했다.
결국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인 권성동 원내대표가 “혁신을 둘러싼 논의가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 회의에서 양측에 자제를 요청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정 의원도 이날은 맞대응 대신 “정부 여당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 대표의 성 상납 의혹과 관련한 징계 여부를 결정할 윤리위원회가 계속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친윤 의원들이 15일 당내 의원모임을 발족시키기로 하는 등 본격적으로 세력화에 나서는 것도 변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 측에서 직접 교통정리를 하지 않는 이상 당권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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