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세계 군사 전문가들의 시선은 일제히 중국 상하이로 쏠렸다. 미국 이외의 국가로선 처음으로 중국이 만재 배수량 10만t에 달하는 초대형 항공모함(항모) 진수식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6월 3일 거행될 것이라던 진수식이 4월에 이어 다시 연기되긴 했지만, 중국 해군이 초대형 항모를 거의 완성해 조만간 실전 배치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항모를 위시한 미래 중국 해군은 인도·태평양 지역은 물론, 한국 안보에도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이 자명하다.
中 ‘양산형 항모’ 준비
새로 진수될 항모는 기존 중국 항모 랴오닝(遼寧), 산둥(山東)과는 차원이 다르다. 랴오닝은 옛 소련의 미완성 항모를 가져와 개조한 것이다. 산둥은 랴오닝 설계를 바탕으로 소폭 확대 개량한 것에 지나지 않아 덩치는 크지만 덩칫값을 못하는 항모다. 기존 중국 항모들은 스키점프대를 이용해 전투기를 띄우고 강제착함장치로 회수하는 STOBAR(Short Take Off But Arrested Recovery)라는 항공기 운용 방식을 쓰고 있다. 미국 항모의 CATOBAR(Catapult Assisted Take Off But Arrested Recovery) 방식과 비교해 항공기의 무장·연료 탑재량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전투기 자체 성능이 약화되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중국의 주력 함재 전투기인 J(젠)-15는 설계 결함에 따른 성능 부족으로 중국군 파일럿들이 가장 기피하는 전투기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이 곧 진수할 ‘003형 항모’는 앞선 001형(랴오닝)이나 002형(산둥)과는 다르다. 중국이 본격적인 ‘양산형 항모’로 준비하고 있는 004형 항모의 선행 실험함으로서 성격이 짙다. 향후 중국은 원자력 추진 방식의 004형 항모를 최소 3척 건조할 계획이다. 003형은 동력 계통만 원자력이 아닐 뿐, 거의 모든 장비가 004형에 장착될 것과 동일하다고 알려졌다.
눈여겨봐야 할 대표적인 장비가 전자기식 사출기(EMALS)다. 중국이 10년 넘게 개발에 매진한 장비로, 미국 제럴드 R. 포드급 항모에 탑재된 것과 유사하다. 기존 미국 니미츠급 항모는 원자로에서 만들어내는 막대한 양의 증기를 압축해 항공기를 새총처럼 쏘아 올렸다. EMALS는 증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고압 전기로 항공기를 쏘아 올리는 방식이다. 미 해군 제럴드 R. 포드급 항모에 탑재된 EMALS는 길이 91m의 레일을 이용해 최대 45t 물체를 시속 240㎞로 가속해 발진시킬 수 있다. 중국이 개발해 003형에 탑재한 EMALS도 지상 실험 결과 미 해군 장비에 준하는 수준의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새 항모에 실을 함재기도 주목된다. 중국은 이 항모에서 ‘중국판 F-35C’로 불리는 J-35 전투기를 운용할 예정이다. J-35는 공식적으론 수출용 명칭 ‘FC(Fighter China)?31’로 통칭되지만, 일부 소식통은 “중국 해군의 제식 전투기로 채택돼 J-35라는 명칭이 부여됐다”고 전한다. ‘젠(殲)’은 영어로 ‘Fighter’로 풀이된다. 2030년대 미국과 중국 모두 ‘F-35’라는 동명이종(同名二種) 전투기를 주력 함재기로 쓰게 되는 셈이다. J-35는 길이 17.3m, 폭 11.5m, 최대이륙중량 28t으로 길이 15.7m, 폭 13.1m, 최대이륙중량 31.8t인 미국 F-35C보다 다소 가볍다. 물론 J-35는 FC-31 시제기 실험 시기부터 꾸준히 무게가 증가했기에 실제 양산 단계에서는 F-35C와 거의 유사한 덩치와 무게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美 항모 부족에 ‘라이트닝 캐리어’ 배치
이 전투기는 내부 무장창을 설치해 F-35C와 대등한 무장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속도는 마하(음속) 1.8이고 작전 반경은 1250㎞로 기동성도 F-35C와 비슷해 보인다. 레이더와 항공전자장비는 J-20에 들어간 제품들이 소폭 개량돼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중국이 주장하는 카탈로그 데이터가 사실이라면 003형부터 중국 항모는 미국 ‘슈퍼 캐리어’와 거의 대등한 전력을 갖추는 셈이다.
중국 측 공언대로 2035년까지 중국형 슈퍼 캐리어 4척, 이를 보조하는 076형 경항모 겸 강습상륙함 3척이 추가 배치되면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간 항모 전력 우열이 뒤바뀌게 된다. 현재 미국은 제7함대에 전진 배치된 항모 1척 외에 1~2척의 항모를 증원해 서태평양 안보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항모 전력이 급격히 팽창하자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에 F-35B를 가득 탑재한 ‘라이트닝 캐리어(Lightning Carrier)’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항모로 항모 부족에 대비하고 있다. 제공·타격 작전을 동시에 수행하는 정규 항모와 달리 라이트닝 캐리어는 함대방공에 특화된 항모다. 지상 발진 초계기와 조기경보기 등 지원 전력의 지원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제한된 능력을 갖췄지만, 현재로선 서태평양 지역의 항모 부족 문제에 대응할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중국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대량으로 건조하는 군함은 항모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5월 말 기준 미 해군의 함정은 298척이며 작전 배치 함정은 그중 116척이다. 이 가운데 60%에 달하는 70척이 서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제7함대에 배속됐다. 이 70척엔 항모 2척, 강습상륙함 2척을 포함해 구축함, 잠수함, 지원함 등이 포함돼 있다. 서태평양과 인도양 일대의 질서를 유지하고 유사시 중국과 북한 등의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미 해군 제7함대의 능력은 역내 모든 국가의 해군력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이 같은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무서운 속도로 수상전투함 전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판 줌월트’라고 선전한 1만3000t급 대형 구축함 055형을 이미 8척 건조했다. 이 중 6척은 해군에 인도됐고, 2척은 시운전 중이며, 또 다른 8척이 동시 건조되고 있다. 중국은 055형을 최소 18척 건조해 항모 전단 호위와 수상함 전단 지휘함 임무를 맡길 계획이다. 미국의 대형 구축함 줌월트가 단 3척만 건조된 데 그친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다. 그 외에도 중국은 ‘중국판 알레이버크급’으로 불리는 7500t급 052D 계열 방공 구축함도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다. 052D 계열은 5월 말 기준 25척이 현역으로 배치됐다. 현재 12척이 추가로 건조되고 있다. 기존 노후함을 대체하기 위한 추가 건조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052D 계열은 향후 40~50척 가까이 배치될 수도 있다.
5월부터 건조되기 시작한 054B급은 중국 함대 규모와 질적 수준을 크게 강화할 ‘히든카드’로 꼽힌다. 054B는 현재 30척이 배치된 4000t급 호위함 054A급의 후속함이다. 5월 20일 중국선박집단유한공사(中國船舶集團有限公司) 산하 황푸웬쳉조선(黃?文衝造船)에서 강재 절단을 시작으로 초도함 건조가 시작됐다.
中 신형 호위함·구축함 100척 눈앞
중국 조선업계에서 ‘미니 055형’이라고 평가받는 054B형 호위함은 055형 구축함을 개발하면서 얻은 기술이 대거 적용될 예정이다. 덩치가 구축함 수준인 6000t급으로 커지면서 선체도 완전히 재설계됐다. 4면 고정식 위상배열레이더와 장거리방공미사일, 초음속 대함 미사일과 무인기 운용 능력도 갖췄다. 중국 일부 매체는 “중국 해군이 054B를 개발한 이유가 054A의 속도 및 무장 능력 부족 때문”이라면서 “054B가 기존 054A 일부를 대체하거나 아예 신규 전력으로 대량 건조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 배가 054A와 비슷한 규모로 대량 건조되면 중국의 신형 호위함·구축함 전력은 100척을 가볍게 넘어서게 된다.
중국은 유인함(有人艦) 말고도 무인함(無人艦) 전력화도 서두르고 있다. 앞선 황푸웬쳉조선에선 5월 31일 대형 무인전투함 건조 작업도 시작했다. 삼동선형 선체인 이 무인함은 고도의 스텔스 설계를 갖추고 미사일로 무장해 유인함과 함께 대공·대함·대잠 작전을 수행할 예정이다.
중국의 해군력 팽창 규모와 속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경이로운 건함(建艦) 레이스에 견줄 만하다. 미국이 해군력을 재정비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과 반중(反中) 군사협력체를 완성하기 전 대만 점령 등 전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미·중 대결의 최일선에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항모와 구축함, 호위함 전력의 60% 이상은 중국 북해함대와 동해함대에 배치된다. 이들의 작전구역은 한반도 서해·남해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 경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질적·양적으로 무섭게 팽창하는 중국 해군과의 충돌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한국 해군력, 환골탈태해야
중국의 건함 총력전에 미국도 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현재 10척 체제의 항모를 12척 체제로 확대할 계획이다.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과 차세대 구축함 도입 사업도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일정을 앞당기는 모습이다. 이렇게 해도 메울 수 없는 전력 공백은 일본과 호주 등 동맹국의 해군력 강화를 유도하면서 연합전력으로 채우는 방향으로 극복하고 있다. 최근 일본과 호주는 향후 10년간 전례 없는 규모로 건함 예산을 투입해 고성능 대형 전투함을 대량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한때 중국 관영매체가 ‘미국 동맹국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라고 조롱한 한국이다. 중국과 미국은 물론 일본, 호주, 심지어 베트남·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도 해군력 팽창에 열을 올릴 때 한국은 북한의 위협만 상정한 저성능 전투함 배치에 매달렸다. 이러한 전투함마저 병력 부족으로 육상 근무 인원을 쥐어짜내 겨우 운용하는 실정이다. 지난 5년은 ‘의지’가 없어 중국으로부터 ‘가장 약한 고리’라고 조롱당했다면, 지금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려 해도 ‘능력’이 없어 그러지 못할 판이다.
최근 폴란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으로 현재 14만 명인 정규군 규모를 30만 명으로 확대하고 특별군사예산까지 편성해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로부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라는 인정을 받으며 위상을 높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국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서태평양 지역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도 건함 사업에서 환골탈태에 가까운 해군력 강화가 대단히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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