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 등의 존안(存案) 자료를 뜻하는 이른바 ‘국정원 X파일’의 존재를 언급한 것을 두고 여권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정원장의 입이 이토록 가볍다”며 불쾌감을 드러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내세우려는 태도”라고 성토했다. 국정원까지 나서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하자 박 전 원장은 “앞으로 공개 발언 시 유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 대통령실 “공개하고 교도소에서 보면 된다” 불쾌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직 국정원장의 입이 이토록 가벼울 수가 있느냐”면서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밖에 이야기하면 어떤 조치를 당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저러는 의도가 의아하다”고 반발했다. 이어 박 전 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공개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라. (법 위반으로) 교도소에서 보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앞서 박 전 원장은 10일 CBS 라디오에서 “국정원에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분들 존안 자료, ‘X파일’을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X파일의 내용에 대해 “정치인은 ‘어디에 어떻게 해서 돈을 받았다더라’, ‘어떤 연예인과 섬싱이 있다’ 이런 것들”이라며 “공개되면 이혼당할 정치인이 상당할 것”이라고도 했다.
11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자료도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윤 대통령 등 현 정부 정치인의 파일 존재를 묻는 질문에 “국정원법 위반하면 제가 또 감옥 간다. 한 번 갔다 왔으면 됐지 또 가야겠느냐”며 “그러니 디테일하게는 얘기 못 하지만 근본적으로 있다”고 답했다.
국정원은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사실 여부를 떠나 국정원장 재직 시 알게 된 직무 사항을 공표하는 것은 전직 원장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공개 활동 과정에서 국정원 관련 사항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경고했다.
이날 국민의힘 김형동 수석대변인도 “박 전 원장이 윤 대통령의 X파일도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내세우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여권에서는 “국정원장 재직 당시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씨에게 대외비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박 전 원장이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 朴 “공개 발언 시 유의하겠다”
논란이 커지자 박 전 원장은 페이스북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제가 몸담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정원과 국정원 직원들에게 부담이 된다면 앞으로는 공개 발언 시 더 유의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국정원 문서가 정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소신을 얘기한 것으로, 평소 여야 의원들이나 기자들과 간담회 때도 얘기했던 내용”이라며 “국회에서 (자료 폐기를) 논의하다 중단된 것이 아쉽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권에서는 박 전 원장이 정치적 존재감을 피력하기 위한 의도로 X파일을 거론했다는 시선이 있다. 한때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박 전 원장을 대북 특사 등 소통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김규현 현 국정원장을 내정했다. 박 전 원장은 방송에서 “윤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하고 11일 나를 쫓아내 버리더라. 좀 섭섭하기도 했다”고 했다. 한편으론 “박 전 원장이 너무 가볍게 이번 논란을 촉발시킨 측면이 있지만 과거 국정원이 합법과 위법을 넘나들며 축적했던 국내 정보의 처리 방향과 향후 수집 방향을 어떻게 통제할지에 대한 고심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도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이 평소 지론인 정보기관 수장으로부터의 ‘독대’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정원장과 군사안보지원사령관, 경찰청장 등 정보기관 수장으로부터 독대 보고를 받지 않을 방침”이라며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수사하며 독대 보고의 문제점을 인식한 윤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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