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1년9개월 전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건과 관련해 ‘월북 추정’이라던 당초 발표 내용을 철회한 데 따른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씨 유족과 정치권 등에선 군 당국이 이씨에게 “자진 월북을 시도한 정황이 있다”는 최초 판단 근거가 됐던 특수정보(SI)를 공개할 필요가 있단 요구가 제기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20일 군 당국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군이 다루는 특정 정보의 공개 여부는 담당 부서가 먼저 판단한다. 국방부에선 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와 장관 결재를 거쳐야 특정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SI, 즉 ‘적에 누설될 경우 군사작전·정보활동에 치명적인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어 그 출처·내용이 은폐된 정보’의 경우 “그 입수 경로·방법 등까지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어 공개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게 군 안팎의 일반적인 견해다.
게다가 북한군 동향 등에 관한 SI 중엔 우리 군 자산뿐만 아니라 미군 자산을 이용해 확보한 첩보를 바탕으로 한 것도 적지 않아 이를 공개하려면 “한미 정보당국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군 당국은 2020년 9월 이씨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북한군 교신에 대한 도·감청 등을 통해 “월북”이란 단어가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군 자산을 통해 확보한 첩보도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이씨 사건 관련 정보를 제한적이나마 공개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법과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작년 11월 이씨 유족이 당시 청와대(국가안보실)와 해양경찰청 등을 상대로 낸 이 사건 관련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고, 군사기밀을 제외한 고인의 사망 경위 등 일부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안보실과 해경이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해당 판결에 대해 항소하면서 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다가 이달 16일 안보실에서 항소를 취하하자 해경도 항소를 취하하면서 사건 수사기록 가운데 일부를 이씨 유족에게 공개했다.
게다가 같은 날 해경과 국방부는 “(이씨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며 이 사건에 대한 기존 수사 결과와 입장을 뒤집었다.
그러나 현재 이 사건 관련 수사·조사결과 및 처리과정 등을 담은 자료 가운데 안보실 등 청와대에서 생산·보고한 것은 지난달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만료와 함께 ‘대통령 지정 기록물’(15년 간 비공개)로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당장 열람 또는 공개가 불가능한 상태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 동의가 있거나 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있어야 열람할 수 있다.
즉, 국회가 이씨 사건과 관련한 ‘대통령 지정 기록물’ 열람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해경과 국방부가 보유한 관련 자료, 그 중에서도 군의 SI가 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주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대통령 지정 기록물’ 공개엔 부정적인 기류가 많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 문 부대변인은 “(이씨 사건 관련)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법원 판결(군사기밀 제외)이 있었고, 정보자산에 대한 무분별한 공개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면서도 “법과 규정에 따라 (정보 공개가) 결정된다면 국방부나 군은 당연히 따라야 할 것이다. 공개 범위·내용 등은 그때 협의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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