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 등에 기반한 ‘가치 규범 연대’를 외교정책 기조로 내건 윤석열 정부가 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탈피를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28일(현지 시간)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대신 원자력 발전과 방위산업 등 미래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수출 시장 다변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시작됐다는 평가 속에 윤석열 정부의 신(新)경제·안보전략의 모습이 구체화되고 있다.
○ “中 의존도 줄이고 대안 찾아야”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이날 스페인 마드리드 프레스센터에서 이번 정상회의 일정의 경제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내수 중심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중국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고 다변화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대안에 대해 “미국에 이어 경제안보 협력의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는 지역이 바로 유럽”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히 ‘쌍순환(雙循環)’을 콕 집어 언급했다. 쌍순환은 내수와 수출을 모두 증가시켜 미국의 경제 공세에 대응하겠다는 중국의 경제 전략이다. 미국의 규제로 어려워진 수출 대신 사실상 내수로 성장을 이끌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결국 정부는 신성장을 뒷받침할 새로운 지역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 우리도 중국과의 관계가 더 부담스러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런 상황을 고려해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가치 연대’를 기반으로 한 경제·안보 전략을 강조했다. 그는 28일 세종 총리 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이 섭섭해서 경제 보복을 하면 어쩔 거냐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세계가 존중하는 가치, 나아가야 하는 원칙을 추구하려는데 중국이 불만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불리한 행동을 하겠다고 하면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한 총리는 특히 ‘만약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때와 같은 보복이 있더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외교 원칙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물론이죠”라고 답했다.
○ 원전과 방산 앞세워 유럽 공략
유럽은 한국이 관심을 갖는 신산업 육성에도 적합한 지역이다. 최 수석은 “(이번 순방은) 새로운 수출 주력 사업에 대한 정상급 세일즈 외교(경제 외교)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단 원자력발전과 방위산업부터 시작한다”며 “향후 5년간 이런 주력 산업의 리스트들이 추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유럽 국가들과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첨단산업의 공급망 강화를 위한 논의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29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세계적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국내 투자를 요청했다. ASML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방문했던 회사다. 윤 대통령은 “ASML과 같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의 한국 투자가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뤼터 총리는 “양국 간 반도체 분야에서 상호보완적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실이 원전 세일즈를 예고한 이날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으로 체코를 방문해 요제프 시켈라 체코 산업통상장관과 밀로시 비스트르칠 상원의장을 만나 한국의 원전사업 역량을 설명했다. 체코는 두코바니 지역에 8조 원을 들여 1200MW 이하급 가압경수로 원전 1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올해 11월 입찰제안서를 접수한다.
○ 中, 한국 등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연일 반발
다만 중국의 거센 반발은 고민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중국을 겨냥한 미국 주도의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참여한 바 있다. 중국은 이날 다시 불편한 기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나토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끌어들이는 것은 늑대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며 “중국과의 전략적 상호 신뢰에 해를 끼칠 것이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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