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9년 11월 합동조사를 강제 조기 중단시킨 혐의로 고발된 이른바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 당시 국정원이 주도하는 중앙합동조사팀은 상부로부터 탈북 어민 2명의 북송 결정을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합조팀에서는 이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고 범죄 혐의가 명백하다는 점에서 국내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는 방안을 두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조사 개시 사흘 만에 강제 북송 결정이 합조팀에 전달됐다는 것. 이에 따라 검찰도 당시 북송 결정이 내려진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 일반 귀순자에 준해 조사 중 북송 통보
7일 정부 당국자와 국회 정보위원회 등에 따르면 북한 선원 16명을 선상에서 살해하고 도주한 북한 어민 A 씨(당시 23세)와 B 씨(당시 22세)가 북방한계선(NLL) 이남에서 붙잡혀 강원 동해 군항으로 나포된 시각은 2019년 11월 2일 오전 10시 16분경. 이들은 기초 조사를 거친 후 동해에서 서울 모처에 있는 합조팀이 사용하는 건물로 압송됐다. 국정원을 중심으로 군, 경찰 관계자 등이 참여한 합조팀은 정식 조사에 앞서 이들의 귀순 의사부터 물었다. 당시 두 사람 모두 ‘귀순’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기(남한)에 있겠다”며 귀순 의향서에 자필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귀순 의사를 밝힌 만큼 ‘일반 귀순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합조팀에서 묻기 전 “배에서 북한 선원 16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사전 첩보를 통해 이들의 범죄를 짐작하고 있던 합조팀은 자백 사실을 즉시 보고하고 조사를 이어갔다.
한 소식통은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 뒤 사흘째인 11월 6일 상부에서 두 사람의 북송 결정이 합조팀에 통보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당시 합조팀은 서둘러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11월 5일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두 사람의 추방 의사를 전달했고, 북한이 다음 날 “이들을 인수하겠다”고 답하면서 북송 결정이 통보된 것.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합조팀 내에서는 “두 사람이 북송되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11월 7일 오전 안대를 차고 포박된 채 차에 몸을 실었고, 오후 판문점 자유의집을 통해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넘겨졌다. 당시 북송과 관련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 안팎에서는 “다른 송환과 달리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다”는 반응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당시 “국내서 수사해야” 주장도 나와
당시 합조팀에서는 두 사람을 조사하는 동안 이들의 신병 처리를 두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2주 이상 소요되는 합조팀 조사에서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자는 위장 탈북(간첩) 가능성 등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판단되면 하나원 등에서 생활하며 적응기간을 거쳐 한국 사회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16명을 살해한 중대 범죄를 자백한 만큼 수사권이 있는 국내 수사기관으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것.
당시 상황과 관련해 “이들이 북한 해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헌법상 북한은 한국 영토고, 이들이 귀순 의사를 밝힌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국내 수사기관이 두 사람을 수사할 법적 근거가 있다”는 의견과 “북한 주민이 북한 영토에서 벌인 범죄를 한국 수사기관이 수사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모두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이 살해한 시신 16구와 범행 도구가 이미 바다에 버려져 증거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 요인이었다. 다만 합조팀에서 강제 북송은 거론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두 사람을) 송환한 이유는 첫 번째 그자들은 엽기적인 살인마였다”며 “두 번째로는 그 사람들이 귀순할 의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송 결정)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 없이 모든 과정을 다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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