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2일 “그간 당을 주도해온 세력은 낡았고, 심상정의 리더십은 소진되었다”고 밝혔다.
대선후보와 당대표를 역임하며 진보정당 최대 지분을 보유한 인사로서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심상정 책임론’을 인정한 셈이다.
심 의원은 이날 정의당 홈페이지 ‘10년 평가위원회’ 게시판에 올린 개별 의견서를 통해 “지난 20년간 당을 지탱해온 정치철학, 비전, 조직 등은 수명이 다했다. 그동안 몇 번의 재창당을 통해 새로운 시도들이 보완되긴 했지만, 전면적으로 대체되지는 못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정의당 10년 평가위원회(위원장 한석호 비대위원)는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개별 평가서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심 의원은 “이제 저는 진보정당 1세대의 실험이 끝났다고 본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23년간을 버텨 왔지만, 우리는 미래를 열지 못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저의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이제 차기 리더십이 주도할 근본적 혁신은 주류세력 교체, 세대교체, 인물교체를 통해 긴 호흡으로 완전히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21대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공직선거법 개정 공조를 추진하며 불거진 ‘민주당 2중대’ 비판에 대해서도 작심 발언을 했다.
심 의원은 “모든 것을 쏟아부은 개정선거법은 위성정당으로 좌초되었고, 교섭단체의 꿈은 좌절되었다”며 “법과 제도는 그것을 지켜낼 역량이 부족한 세력에게 스스로 봉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시켜주는 계기였다”고 토로했다.
또 “조국 사태 국면에서의 오판으로 진보 정치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며 “조국 사태와 관련한 당시 결정은 명백한 정치적 오류였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이 사건은 제게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준에 동의한 것과 관련해선 “당시 당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조국 장관에 대한 승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승인을 하지 않을 경우 최소 4000명에서 많게는 8000명 당원들의 대량 탈당이 예측되었다”며 “당 대표로서 총선을 앞두고 거의 분당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노동’과 ‘젠더’ 이슈를 둘러싼 당내 노선투쟁과 관련해선 “민감한 성폭력 이슈가 많이 터졌고 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많이 부각되었고, 그에 대한 백래시로서 ‘페미당’이라는 공격이 있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노동 및 민생이슈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일이지, 성평등 노력이 과했다는 식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그동안 지적되었던 의원들의 개인적 돌출행위에 대해서는 평가할 수 있다”며 “의원들은 신중하게 처신하고 적극적으로 당적 고려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당 지도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의제 전략을 구체화하고 갈등 이슈들을 당익에 부합하게 컨트롤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는 전직 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피소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문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성폭력 피해자와의 연대를 이유로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조문을 가지 않자 민주당에 우호적인 당원들이 탈당하는 일이 빚어졌다. 심상정 당시 대표는 조문을 했다.
심 의원은 또 당내 일각의 비례대표 의원 총사퇴 당원 총투표와 관련해 “이 상황에 저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당의 실존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2년 남짓 활동한 비례 국회의원들에게 물을 수는 없다”고 자제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당에서 부여받은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도 지는 것이다. 책임을 따지자면 그동안 이 당을 이끌어온 리더들의 책임이 앞서야 한다”며 “그중에서도 저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국회의원들의 정치활동에 대해 평가와 성찰과 분발을 촉구하시더라도, 주요한 책임의 몫은 저에게 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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