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국가’의 숙명과 처세의 교훈 일깨운 우크라이나 전쟁[화정안보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3일 1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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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지정학적 단층지대에 위치한 중소 국가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그래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일깨우는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한반도에 강한 시사점을 준다. 미국의 한 전략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2의 6·25 전쟁’이라고 했다.

한러대화(KRD·조정위원장 이규형 전 주러대사)는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타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관계’를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배경과 원인,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고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집중 분석했다.

●‘여타 국가들’과의 다층적 외교로 활로 찾아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8일 열린 한러대화 세미나 종합토론 섹션에서 전문가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상두 연세대 교수, 박종호 KRBC 대표, 고재남 우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사회자),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8일 열린 한러대화 세미나 종합토론 섹션에서 전문가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상두 연세대 교수, 박종호 KRBC 대표, 고재남 우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사회자),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3중 전쟁’의 성격이 있다고 진단했다. 첫째는 러시아와 서방, 특히 러시아 대 미국 간 전쟁이다. 탈냉전 이후 유럽 안보질서 개편 과정에서 러시아 안보에 대한 고려가 배재돼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이 원인(遠因)으로 지목됐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바탕에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게는 나토의 동진은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위협으로 인식됐다. 2003년 이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키르키스스탄에서 나타난 각종 색깔의 민주화 혁명이 러시아의 체제 변화 요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러한 도전에 러시아가 공세적 방어로 전환해 나타난 것이 2008년 조지아 남오세티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과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이었다.

둘째는 나토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와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 간 전쟁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만이 안보를 보장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9년 2월 포로센코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통해 나입 가입을 천명했다. 그런데 이런 나토 가입 가속화는 오히려 올해 2월 러시아 침공의 근인(近因)이 됐다고 신 교수는 분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6월 마드리드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6월 마드리드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세 번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강화된 민족주의의 충돌이라는 측면이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민족주의에 근거한 배타적 정책이 가시화하면서 동부 돈바스 지역 등에서 러시아어 사용 주민에 대한 압박정책을 강화한 것을 신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촉발적 요인으로 보았다. 러시아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준비없이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나치화 움직임을 전쟁 명분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신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타난 서방과 중-러 진영간의 대립 구도를 ‘신냉전’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과거 냉전과는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념에 따라 두 개의 진영으로 확연히 갈라졌던 냉전 시대와 달리 이번에는 적지 않은 ‘여타 국가들(the Rest)’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한 명백한 침범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나토 회원국 터키, 인도 태평양에서 대중 견제전선의 핵심 국가인 인도, 중동에서는 미국의 군사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포함됐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국가 일부와 유럽에서는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이 있다. 자국 이익에 따라 진영화해 G20 국가 중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가 절반인 10개국이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은 ‘지정학적 활성 단층대’에 있는 ‘중간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강대국 논리에 따라 얄타회담에서 한반도가 분단되었듯 우크라이나도 자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래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신 교수는 “지질 구조상의 단층대가 활성화하면 지진이 발생해 많을 피해를 줄 수 있듯이 지정학적 단층대가 활성화되는 상황에 처한 중간국의 갑작스러운 외교 안보 노선의 변경은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중간국은 외교적 자율성 확보가 외교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에 강대국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국 연대나 소다자 협력같은 다층적 국제정치 구도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타 국가들’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이들 국가와의 연대를 통해 미국 유럽 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 구도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모색하고 외교의 자율성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외교 전략이나 노선을 정하는데 있어 국내 정치적인 합의 기반을 마련해 국내적 분열의 요소를 억제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아태 지역에도 영향


엄구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축 통화인 달러의 횡포 때문에 루블화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피해의식을 가진 러시아가 원자재를 레버리지로 벌이고 있는 경제 전쟁의 성격도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앞으로 국제경제에서는 경제 안보가 전통 안보 못지않게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처럼 얼마나 싸게 공급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신뢰를 얻고 공급을 받을 수 있느냐의 경제안보 질서가 중요해 질 것이라는 것이다. 공급망에서 가격보다 신뢰가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의 루블화 환율 상황. 동아일보DB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의 루블화 환율 상황. 동아일보DB


엄 교수는 러시아가 동부 돈바스 지역을 점령한 뒤 영토 분할을 선언한 채 협상이 결렬되면 우크라이나 사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경우 미국의 대중 견제 인도-태평양 전략의 추동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먹구름이 짙어지고 쉽게 걷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고대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주요 경쟁 도시인 아테네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동맹 관계였던 멜로스의 보호를 포기했다며 강대국 사이에 놓인 ‘낀 국가’의 비극과 운명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역사적으로 명분과 전통을 중시한 나머지 침략과 항복의 굴욕의 역사가 이어져왔다. 19세기 이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지정학적 경쟁에 끼여 전쟁, 점령, 분단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낀 국가’는 지정학적 역사적 정체성, 국가역량, 지정학적 환경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대국의 명분없는 침략전쟁은 소국의 명분있는 국민적 저항에 번번이 무산된 것이 전쟁사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자강(自强)에 힘쓰고, 국론 합의에 기반을 둔 일관성 있는 외교정책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 보존은 모든 중소국, 끼인 국가들에게 공통된 가치이자 이익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북핵에도 악영향


엄 교수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서구와의 대결에서 직면한 전략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균형수단으로 동북아에서 북한과의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면 북핵 해결에서 한러간 협력의 공간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핵과 미사일 무장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에 안 좋은 시그널을 주었다며 대북 핵정책에 대한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도 강조한 한미 동맹 강화에 기초한 대북 확장억제에 ‘전술핵 무기 반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 전술핵 반입이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와 모순된다는 반론이 강하지만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고, 북핵 강화에 따른 독자 핵무장 요구를 무마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BCM) 화성-17형. 동아일보DB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BCM) 화성-17형. 동아일보DB


장세호 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한반도에서의 전면 전쟁도 놀랄 일이 아니게 됐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일본은 재무장과 보통국가화를 위한 기회로 삼기 위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따른 고립에서 탈피하고 대북 압박을 분산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했다.

전 교수는 과거 우크라이나가 ‘부다페스트 각서’ 등을 통해 핵을 포기한 것이 옳았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최대 과제는 국제사회의 인정이었는데 최대의 장애는 핵 보유였다. 당시 국제사회의 인정 속에 강대국으로부터의 안전 약속과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핵을 포기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국가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경제와 국가발전 전략은 실패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고립과 제재를 당하고 있는 북한에게 과거 우크라이나의 선택, 즉 비핵화의 길이 없다고만 할 수 없다. 북한은 비핵화에 앞서 먼저 핵동결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전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멈출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한국에 ‘빌런(불량 국가)’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국립외교원 이태림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역할과 가치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이 크지 않다고 해도 ‘빌런(villian·불량 국가)’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처럼 공공연한 대러 비난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 지원이나 공급은 물론 폴란드 등을 통한 무기 지원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직간접적인 무기 지원은 러시아가 한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역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과의 대립 국면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강조되고 있지만 동북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견제를 위해 ‘한국 카드’를 두고 싶어한다며 러시아가 끝내 한국 카드를 버리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 사태로 강해진 중-러 협력, 내구성은?


신범식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러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며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가해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협력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이 중앙유라시아를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이익을 조율,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러시아가 구상하는 다극 질서에 대해 중국이 얼마나 동의할 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엄구호 교수는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 두 개의 전선을 갖게 되어 대중 압박이 약해질 수 있어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가장 큰 수혜국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도 커졌고 그동안 실체가 불분명했던 브릭스(BRICS·러시아 중국 인도 남아공 브라질 5개국 협의체)도 러시아를 지지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엄 교수는 전쟁 장기화에 따라 서구나 우크라이나의 피해가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러 밀착이 강화되는 것도 미국 국익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미국 주도의 대러 협상이 필요하며 이 협상 결과가 러시아의 국제사회 복귀 시점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미-러 ‘적대적 공존’으로서의 우크라이나 전쟁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밑바탕에는 유라시아 패권 장악을 놓고 미러가 벌이는 권력투쟁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구소련 해체 이후 미국 주도의 나토 동진에 대한 반발을 이어왔는데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15년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군사적 개입도 냉전시대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복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

홍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의 증폭을 통해 양측이 모두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적대적 공존’의 전쟁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 약화됐던 나토의 결집력을 복구하고 유럽연합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자 했는데 러시아를 외부 공통의 적으로 한 안보 위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됐다고 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유럽이 미국에 의존적인 안보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쟁 장기화로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미국이 구상하는 이같은 지정학적 목표들은 대부분 달성됐다는 것이 홍 교수의 분석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나토의 동진과 팽창 차단에만 그치지 않고 냉전 종식 이후 구축된 국제질서에 대한 재편을 노리고 미국과 유럽, 유럽내 각 국의 분열도 노렸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이같은 지정학적 요인 외에 ‘제국 증후군’에 사로잡혀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탈냉전 이후 손상된 대국적 자부심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오랜 기간 중국에 가려져 있던 러시아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다시 과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불법 침략전쟁에도 불구하고 푸틴에 대해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대목이다. 홍 교수는 이밖에도 푸틴의 장기 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는 목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기회 요소는 없나


고상두 연세대 교수는 21세기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중국의 부활과 러시아의 부활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제국의 부활은커녕) 쇠약의 길로 가게 되었고, 이는 한반도에는 안보 리스크가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했다. ‘낀 국가’ 운명과 비극이 있지만 강대국이 싸울 때 제3의 국가가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는 수출이 제한된 러시아 석유를 ‘우호 가격’이라며 35달러에 구매하고 있다며 미국의 제재를 적용해 할증된 가격에라도 러시아 석유를 구매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으로 한-러간 행위의 주체를 국가나 정부기관이 아닌 기업과 시민사회 등으로 바꿔 활용해서 경색을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방 기업이 철수해 수입 대체 산업 육성 필요성이 큰 러시아에 카자흐스탄을 통한 우회 진출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40%까지 높였다가 대러 제재 국면에서 타격이 큰데 대중 무역 의존도가 25%인 한국에는 미국 유럽으로의 시장 다변화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한미 동맹이 중요하지만 경제 뿐 아니라 대미 편중 안보에서 ‘안보 다변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에서 미국이 한 발 더 나아가 패권정책을 포기할 경우 한국 안보에 소홀하거나 포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 파트너 관계를 강화하고 나토와도 안보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 제재 참여하면서도 한-러 협력도 지속되어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8일 열린 한러대화 세미나 종합토론 섹션에서 전문가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상두 연세대 교수, 박종호 KRBC 대표, 고재남 우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사회자),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8일 열린 한러대화 세미나 종합토론 섹션에서 전문가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상두 연세대 교수, 박종호 KRBC 대표, 고재남 우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사회자),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미국 등 서방의 대러 제재가 포괄적이고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고립이 심화될 전망이라며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교류 협력이 가능한 분야를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협력 분야와 방향에서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고 러시아의 수요가 큰 디지털 분야가 중장기적으로 유망하고 IT 분야에서 한국의 하드웨어와 러시아의 소프트웨어의 상호보완성이 특히 크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IT 분야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어 첨단 산업 중소기업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종호 한러비즈니스협의회(KRBC) 대표는 서방의 대러 제재 강화로 러시아 내에서 “서방과의 경제 관계는 끝났다”는 분위기마저 있다며 한국에는 협력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30년 이상 사업을 해온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은 “노태우 정부 이후 북방정책은 한국의 국시(國是)였다”며 큰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도 한국 대러 제재 참여로 비우호국으로는 지정했으나 무비자 협정에 따라 비자발급에 어떤 제한도 없다고 했다. 한국 항공사가 우크라이나에 4000만 달러 지원 물품을 수송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1억 달러의 추징금 명목의 보복을 했지만 미국과의 동맹국인 한국이 제재에 동참한 것에 대해 일정 정도 암묵적인 양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제재가 장기화하면 러시아가 북한에 핵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을 넘겨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핵잠 기술은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핵잠수함에 탄두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기 때문에 위협적일 수 있다.

박 대표는 대러 제재에 한국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진 하산에 대한 한국의 독자 제재는 지난 정부에서 해결했어야 한다며 “있지도 않은 미국의 눈치 보기”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란의 원유 수입을 지속한 것이 좋은 사례라고 했다.

엄 교수는 “시장, 에너지, 물류 등의 성장 인프라를 제공하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한 한국으로서는 북방정책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통한 러시아와의 간접적 경제 협력도 모색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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