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만 봉쇄’ 훈련으로 인한 대만 해협의 긴장 고조와 관련해 박진 외교부 장관이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뒤 우리 정부 고위급 인사의 첫 공식 반응이다. 다만 박 장관은 동시에 “하나의 중국을 지지 한다”고 밝히며 중국 비판의 수위를 조절했다. 펠로시 의장의 방한 때 한미, 한중 관계를 고려해 윤석열 대통령이 회동 대신 전화 통화만 가진 것과 같은 흐름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 국면이 날로 첨예해지면서 정부 외교 정책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다.
● 박진 “하나의 중국 지지”
박 장관은 이날 캄포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 회의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변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대만 문제를 거론했다고 외교부 고위당국자가 밝혔다. 박 장관은 “한국은 하나의 중국 입장을 지지 한다”면서도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국에게 중요하며 역내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이다. 대만 해협에서의 지정학적인 갈등이 격화된다면 공급망 교란을 포함해서 커다란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만 해협에서의 긴장 고조는 북한의 점증하는 안보위협을 감안할 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양안(兩岸) 관계 발전에 대한 아세안 외교장관들의 성명에 주목한다”고 했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전날 미중 양국이 “대화를 나누고 자제해야 한다”며 중재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우리 정부는 중국을 의식해 대만 관련 발언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번 EAS 직전에 대만 문제가 불거졌고, 참가국들이 중국 관련 발언을 내놓는 상황에서 박 장관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 외교부 관계자는 “대만 해협과 관련해 왜 지금 우려를 갖고 주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이 들어갔고,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의 변경에 대해서는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용납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장관은 8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을 찾아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만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 고위급 인사의 첫 방중인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정부의 외교 방향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 中 규탄 대열 속속 합류하는 美 동맹들
서방 국가들은 중국 규탄 대열에 속속 나서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4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만 봉쇄 훈련에 대해 “과잉 반응”이라고 비판했다.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역시 3일 외교장관 공동성명을 내고 중국을 규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맹국인 영국, 캐나다, 호주도 “대만 해협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며 중국에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앞서 아세안 10개국 외교장관들은 중국의 대만 봉쇄 훈련을 ‘도발’로 규정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국과 우방국들이 대만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한국에 대한 압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시 박 장관의 방중을 앞두고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태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대면 회담이 성사되지 않은데 대해 4일 전문가를 인용해 “국익을 지키는 조치”라며 “현 시점에서 한국은 중국을 화나게 하거나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강력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것을 천명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미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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